어엿한 BT인으로의 성장
Date 2018-04-16 20:04:1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505
윤정기
Post Doc.
연세대학교 의생명과학부 의과대학 심장내과
yoonjk87@yuhs.ac.kr

처음 원고 작성 의뢰를 받고, 박사학위를 수여한지 6개월 된 새내기로서 어떤 흐름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현재 한 명의 BT인으로서 나는 큰 로드맵 한가운데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 위에서 돌아본 나의 인생, 고마운 사람들, 미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CT인에서 BT인으로 

 

내가 한 명의 BT인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가장 첫 번째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때 느낀 나의 한계와 좌절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컴퓨터 자체를 무척 좋아했던 일명 컴돌이였다. 당시 대전 지역 정보올림피아드에서 C언어로 은상도 수상하면서 나름 재미와 커리어를 동시에 쌓아가던 학생이었지만,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원할수록 스스로가 가진 프로그래밍에 대한 재능과 소질의 한계점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일명 ‘천재’들로 불릴법한 친구 겸 경쟁자들과 방학 내도록 특별 교육을 받으면서 같은 교육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격차를 실감하고 생애 첫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참고로 그 친구들 중 몇 명은 현재 Nature 본지 페이퍼를 쓰는 등 미국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이전엔 적당한 재능과 소질에 재미까지 더해진 나의 천직이라고 느끼던 프로그래밍이 현재 되돌아보면 귀여운 수준이었던 그 날들의 좌절감으로 인하여 그렇게 내 인생에서 멀어져갔고, 그 선택으로 인하여 당분간은 큰 꿈 없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만 몰두하는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다행히 과목별 공부하는 요령을 잘 파악하는 능력 덕에 그 괴물 같은 친구들과 가끔 엎치락뒤치락도 할 정도로 학업 성적이 쓸 만해졌고, 수학능력시험 직후엔 목표했던 의대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예전에 프로그래밍을 할 때부터 느꼈던 창의력에 대한 갈증이 불현듯 되살아났고, 화학과 생물 쪽 성적이 특히 좋았던 나는 많은 학교 선생님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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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대학원 진학 후 초반 멤버들과 랩 가을 나들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고 있는 동료들과 더불어 현재 성균관대에 부임중인 방석호 교수님의 4년 전 앳된 모습도 확인해볼 수 있다.

 


대학원으로의 진학


막상 원하던 전공인 화학생물공학부로 진학은 했지만, 고3 때 학업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공부 외적인 것들이 정말이지 무척 좋았다. 친한 친구들과의 야구 동아리 활동, 여행, 사람 등 서울엔 재밌는 것이 정말 많았고, 너무도 예정된 순리로 어영부영 군대를 전역한 흔한 복학생이 되었다. 이후 가장 친한 동아리 친구들은 각자 정유회사, 석유회사, 엔지니어링 회사로의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왠지 그런 모습들을 보며 취직의 길에 혹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대학원 진학과 더불어 김병수 교수님을 석박통합과정 지도교수님으로 정하게 된 키워드는 명확했다. ‘줄기세포’와 ‘인품’. 당시 화학생물공학부는 응용화학부, 즉 흔히들 말하는 화공과에서 학부 이름에 ‘생물’이 첨가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기였고 주변에 바이오 쪽 연구를 하는 선배들도 많지 않았던 터라, 학부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바이오 분야 중 어떤 분야가 꽃길만 가득할지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나의 선택은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고 있던 줄기세포였다. 또한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격상 사람이 좋아야 연구도 잘 될 것이라 판단했는데, 뛰어난 학술적 실적과 온화한 성품으로 학부생들에게도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계셨던 덕장 김병수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덕장 밑에 졸장 없듯 선배들도 모두 나의 초기 대학원생활에 중요한 파트너들이었던 것을 회상해보면 이는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생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좋았던 점은, 교수님과 선배님들 모두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셨다는 점이다. 석사 1학년 때 실험실이 넓은 곳으로 통째로 이사를 간 사건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님은 심미적 관점과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하며 그림2에 나온 STEMBUCKS라는 이름이 붙은 회의실(이라고 쓰고 휴게실이라 읽는다)을 마련해주셨다. 카페를 모티브로 한 벽돌 모양 외벽과 원목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책이 놓여있는 수납가구들은 모두 20대 중후반 젊은 제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충분하였으며, 연구공간과 분리된 휴식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 진작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공간은 추후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사람들에게 부러움 가득한 유명한 공간이 되면서 여러 교수님과 학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시기적절하고 화목한 소풍, 엠티, 술자리들이 곁들여졌고, 이러한 연구 외적 실험실 모습은 나중에 내가 언젠가 교수직에 임용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본받아야겠다며 다짐한 것들이었다.
연구 이야기를 해보면, 실험실 이름인 ‘줄기세포 및 조직공학 연구실’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직공학에 관련된 다양한 실험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신체 조직으로만 분류 해봐도 뼈, 혈관, 근육, 심장, 피부, 연골 등 소위 말하는 ‘사람 하나 만들 수 있겠다는’ 공부를 했으며, 생체 재료 측면에도 예컨대 여러 다른 실험실과의 collaboration을 통해서 piezoelectric material, topography, graphene, hydrogel, spheroid, nanoparticle 등 할 수 있는 연구는 가리지 않고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연구경험은 곧 내가 연구를 대하는 태도 및 연구 지향점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를테면 현재 내가 지향하는 연구의 목표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성보다는, 바이오를 기반으로 하며 넓은 방면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서로 관련 없는 두 분야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그 지식과 경험이 박사 졸업 1년차에겐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것을 배워나가고 지향하는 길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고 짜릿했고,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동안 주저자 논문 6편과 참여저자 논문 10편을 남겼는데, 운과 시기가 맞은 덕분에 한 편이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출간되면서 BRIC에서 선정하는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속칭 한빛사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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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작년 8월 졸업식. 방부제 처리된 듯한 늙지 않는 김병수 교수님, 그림 1과 비교했을 때 (향상된 휴대폰 카메라의 화질과) 세대교체를 실감할 수 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의 길


현재 나는 연세대학교 하종원 교수님, 성학준 교수님 두 분 밑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박사졸업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 바로 미국에서 Post-doc 생활을 해야 할지, 아니면 국내 Post-doc을 잠시 하다가 나갈지. 졸업 직전엔 6개월만 휴식을 취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회사 취직도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 같다.결론적으론 국내 Post-doc을 하면서 경험을 조금 더 쌓는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 그 결정을 도와주신 분이 현재 지도교수이신 성학준 교수님과 옛 선배들이다. 6개월 전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스스로 평가하기에 ‘할당된 테마를 이끄는 능력’은 우수한 데에 비해 국내외 전반적인 조직공학 혹은 바이오 분야 동향에 대해서 파악을 잘 못하고 있다는 점이 몹시 아쉬웠다.
그러한 점에서 성학준 교수님 랩은 나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랩이라 생각한다. 실험실 외적으로는 병원 소속의 M.D.들 및 연구원들과 미팅을 할 기회가 많이 있고, 실험실 내적으로는 고분자 합성부터 바이오 실험까지 해당 분야 박사 전문가들, 심지어 수의사 선생님까지 랩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학준 교수님은 Vanderbilt University,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겸임교수로 활동하시는 분이기에 국내외 바이오 분야 동향 및 미국으로의 Post-doc 진출에 대한 지식 및 경험도 매우 풍부하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우리 랩은 현재 혈관이라는 큰 테마를 중심으로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른 Post-doc 및 연구원들끼리 모여서 디스커션을 하곤 하며, 함께 미래에 대해서도 구상하곤 한다. 특히 나의 다른 한 분의 지도교수이신 하종원 교수님은 그 말로만 들어봤던 Impact factor 72.4점짜리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논문도 보유하고 계신 훌륭한 M.D., Ph.D. 이시며, 혈관에 대한 학술 지식뿐만 아니라 연구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고 해주고 계신다.비록 10년 동안 몸담았던 공대와 사뭇 다른 의대 특유의 연구 환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이 나의 잠재력을 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어찌되었든 나의 인생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현재 느끼고 진행하고 있는 연구적 마인드 및 성과를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나의 단기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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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성학준 교수님 실험실 구성원들. 여러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다.

 

 

​글을 마치며


요즘도 해외 유수 저널에 실리는 논문들을 읽다보면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또한 어떤 분야에 꽃길만 가득할까 대학원생 시절 막연히 고민하던 것이 현재 어떤 분야를 전문 분야로 삼아야 재미있고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투영되면서 고민과 선택은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낀다. 나의 연구인생 약 6년을 되돌아보면 참 좋은 연구를 했다는 느낌보단 참 좋은 사람들과 연구를 했다는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 서로 어떤 연구를 좋아하고 잘 하는지 함께 고민해온 동료들, 그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 및 조언을 아끼지 않는 교수님들, 내가 배운 조언을 기쁜 마음으로 들어준 후배님들, 함께 연구를 재밌게 진행한 파트너들, 그 연구가 마냥 지루하지 않게 함께 술잔을 기울인 분들, 그리고 부모님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나중에 어떻게든 크게 보답할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내 연구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과 사람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회원이미지
| 19-06-04 03:44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