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Date 2018-04-16 20:44:29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751
오유관
교수
부산대학교 화공생명공학부
youkwan@pusan.ac.kr

14년 전 BT News를 떠올리며


한 달 전 쌀쌀한 어느 저녁 ‘창밖의 BT스토리’ 원고를 요청하는 학회 전화를 받았습니다. 과학학술지 논문작성과는 전혀 다른 부담감과 함께 14년 전 삼십대 초반의 어린(?) 저를 떠올립니다. 2004년 박사학위를 받고 UCSD 박사후연수를 떠나기 전입니다. ‘BT News 대학원생코너’에 ‘10년간의 기나긴 첫 번째 마라톤을 끝내며’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로 2장 분량의 글을 실었습니다. 일반인보다 오랜 학·석·박사 공부를 더디어 끝냈다는 뿌듯함과 한 가족의 가장으로의 책임감에 더해 이제부터 스스로 헤쳐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그 목표(바이오에너지 실용화)를 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라는 맺음말에서 가족, 지도교수, 동료, 친구들이 살뜰히 지켜주는 온실에서 미개척 황무지로 나가는 새내기 박사의 당찬 포부와 굳센 다짐이 느껴집니다.

속상하지만 2018년 40대 중반 현재의 저는 지구, 사회, 지속가능, 에너지 자립 등이 포함된 큰 비전과 이상보다는, 일반적인 국책과제 수행 기간인 3년 단위로 반복적이고 단기적인 목표에 맞추어 살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몇 십 퍼센트 생산성 향상, 선진국 대비 몇 십 퍼센트 효율 제고 등이 될 것입니다. 사업계획서에 최초, 최고, 혁신을 자주 주장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파악이 어렵고 사실 시간도 여의치 않습니다. 당장은 대부분 연구자가 고민하는 실험실 운영 연구비와 SCI 논문편수 등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늘 우선을 두고 있습니다. 올 3월에 첫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이 생물공학연구실의 식구로 들어 왔습니다. 느려 보이지만 무엇이든 즐거이 일을 하는 대학원생들을 보며, 2004년 Ph.D.를 받은 첫해의 설렘과 열정을 떠올립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現)시대를 차가운(이성적인) 머리와 뜨거운(시대의 이상을 품고) 가슴으로 당신(들)과 함께 슬기롭게 살아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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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근무시절 동료 연구원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현재 교수, 연구원, 회사원, 전업주부로서 각자의 삶을 당당히 살고 있는 고마운 ‘당신들’을 늘 기억합니다.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 ‘Si vales bene valeo’


연세대 한동일 교수가 쓴 ‘라틴어 수업(흐름출판 2017)’ 책에 따르면 2000년 전 고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은 ‘Si vales bene est, ego valeo ’ (시 바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요)로 그 뜻은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저는 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종이가 귀한 시대라 주로 ‘Si vales bene valeo ’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로 줄여 썼습니다. 저자가 느낀 것과 같이, 삶이 각박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모두가 어려운 요즘 시대에,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로마인들의 편지 인사말은 제 마음에도 따뜻한 공감을 줍니다.

오랫동안 연구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부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협동성을 늘 강조합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어려운 취업을 쟁취하기 위한 주요 스펙 중의 하나로 ‘더 나은’ 학점을 받기 위해 선배, 후배, 친구 모두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기를 더 선호합니다. 고교시절 내내 대학입시용으로만 쓸모 있는 학생부 종합기록부의 ‘더 나은’ 등급을 받기 위한 상대평가에 심하게 억눌려온 1학년 신입생들은 학점에 더 예민하며, 저도 공평성에 늘 조심합니다. 경쟁지향적인 사회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리고 20세기적 학교규정을 핑계 삼아 관성적인 상대평가에 어느새 익숙해진 저도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함과 시대의 책임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힘든 시절, 서점 한 구석에서 저에게 무언의 응원 메시지를 보낸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해냄 2012)를 떠올립니다. 내용은 제 예상과 상당히(?) 달랐지만, 그 때를 기억하며 힘차게 성장할 학생들의 든든한 토양과 필요한 비료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제 삶의 고마운 ‘당신들’


작년 9월 모교 교수로 돌아왔습니다. 현재의 복잡한 수시/정시 대학입시는 고1 딸도 저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1991년 운 좋게도, 본인의 적성에 맞을 것 같은(그 당시에 취직도 잘 될 것 같은) 학과를 용감하게 선택하고 시험을 치는 이른바 ‘선지원 후시험’ 입시를 통해 화학공학과를 들어왔습니다(당시 입학 경쟁률은 1.22로 기억). 국민 대부분이 중산층이라 믿으며, 경제 성장률도 지금보다 좋았고, 대학생들도 학점과 토익 점수에 크게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시대’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 경제, 문화, 인간관계 등 많은 것들을 급격히 바꾸었습니다. 부모님 세대도 저희 세대도 어려웠습니다. 제 인생의 굵직한 이정표인 석사학위, 병력특례, 공학박사, 박사후 연수, 연구소 근무를 거쳐 모교로 돌아오는 특별한 여정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준 고마운 많은 ‘당신들’ 덕분입니다. 여기서 ‘당신들’이라는 표현은 후배님, 선배님, 교수님, 선생님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함께 온 그리고 앞으로 만날 ‘당신들’을
믿기에 유쾌하고 즐거운 또 다른 여행을 이곳 학교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1997년 석사학위를 받은 저에게 지도교수님은 ‘끝나지 않은 길’ (스코트펙 지음, 김창선 옮김, 소나무 1988)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서 “모험을 통한 자기 발견은 현실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려는 인간의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라고 리뷰를 남겼습니다. 투쟁의 역사 속의 핵심 키워드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저에게 많이 와 닿습니다. ‘생물공학’ 분야는 무한한 가능성과 자원의 보고(寶庫)이지만, 끊임없이 거친 파도가 치며 때로는 심술궂은 태풍을 만날 수 있는 넓은 바다입니다. 거침없이 항해하는(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 열심히 실험실과 산업현장을 지키고 있는) 학생, 후배들에게 제가 받은 ‘당신들’의 진정 어린 말과 도움을 더 크게 전하고 싶습니다.

 


‘미생물 인간’


평소 EBS ‘과학 다큐 비욘드’를 재미있게 봅니다. ‘미생물 인간’ 편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미생물 박물관(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방문으로 시작합니다. 특별한 박물관은 “당신에게 보이지 않지만, 미생물은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으로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 마이크로피아를 소개합니다. 많은 이들이 질병의 원인이거나 사체를 분해하는 정도의 역할로 미생물을 인식하지만, 미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효음료/식품, 화학제품, 의약품, 생물연료 등을 통해 우리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21세기부터는 우리 몸의 일부 유기체이자 필수적인 요소로 새로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큐 속 전문가들은 ‘미생물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몸의 심장, 위, 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체 바이오매스의 3분의 2가 미생물로 ‘지구가 사실 미생물의 행성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내 안의 그들(장내 미생물)의 놀라운 역할 

 

다큐는 무려 7년 동안이나 건강에 위협적인 대변 장애를 겪은 한 자폐 아동의 예를 들어 장내 미생물의 극적인 역할을 설명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심각한 위장문제를 해결하고자, 장에 있는 모든 미생물을 없애고 재배치하는 도전적인 미생물 이식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아이가 약한 자폐 수준으로 향상되었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각자 몸속에 수십 종의 미생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강한 산성의 위에는 104개/그램, 소장의 말단에는 108개/그램, 대장에는 최대 1011개/그램의 미생물이 관찰됩니다(Brock의 미생물 제14판, 2016). 유익한 장내 미생물은 인간에게 필수 비타민과 영양소를 공급하고, 오염된 음식과 물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외부 병원성 미생물과 먹이와 공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장내 미생물은 대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우리 몸의 신경계나 면역계와 상호 작용하면서 우리 몸에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폐 아동의 놀라운 변화는 인체의 특성상 대사, 신경, 면역 체계 등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겠지만, 유익한 장내 미생물 군집 형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더럽게만 여기는 대변(미생물 군집)이 의료 비즈니스로 연결될까요? 인간의 소화기관은 자연계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미생물 생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어느 기업은 아주 건강한 대변 기증자를 찾고 있는데,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합니다. 200여개의 질문과 혈액, 대변 검사 등 의료평가를 통해 지원자의 3% 정도만이 건강한 대변(유익한 미생물 군집)을 기증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나 천식 또는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보이거나 가능성이 있는 지원자는 통과를 못 합니다. 이곳에서 공인된 분변(미생물군집)은 어떤 항생제에도 효과가 없는 심각한 설사병 환자들에게 의약품처럼 공급(이식)됩니다. 90% 이상의 환자에게서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정 장내 미생물은 군집으로만 존재해 일반적인 실험방법으로 분리가 어렵고, 개인의 특성과 식생활에 따라 크게 효과가 달라지며, 장기간의 엄격한 임상실험이 요구될 것입니다.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가까운 시일에 과민성 대장 증후군, 염증성 장 질환과 같은 병에 대해 미생물(군집) 약을 이용한 치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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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년 전 제가 썼던 구식 현미경을 거금(?)을 들여 수리 후 찍은 첫 사진입니다. 명시야(bright-field) 기능만 있지만, 플라스크 안의 ‘그들’(Green microalga Haematococcus pluvialis )을 자세히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마치 지구와 달과 같습니다. 그들도 행복할까요?

 


‘그들’이 잘 있으면 저도 잘 있습니다.


어릴 적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를 자주 먹었습니다. 요즘도 감기가 심하면 주사를 찾곤 합니다. 항생제를 과용하면 몸 속 미생물 생태계가 깨져 설사도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나쁜 균이라고 생각하여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 같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개별로는 자라면 나쁠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깊은 속 미생물 생태계에서 나름대로 자기 역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유전체학, 전사체학, 단백질체학, 대사체학, 지질체학 등 첨단과학을 통해 미생물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들만의 마이크로피아 세상과 네트워크에 대해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효모와 거품이 잔뜩 살아있는 생맥주를 좋아합니다. 주말마다 소문난 수제 맥주 집을 여기저기 찾아다닙니다. 대화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 맛에 취해 세상근심을 뒤로 미루다 술자리가 너무 늦어지면 꼭 다음 날 아침 속이 불편합니다. 다행인 것은 다음다음 날 아침은 대부분 정상상태로 돌아옵니다. 제 장속에 있는 ‘그들’도 술에 취했다가, 점심, 저녁밥을 먹으면서 같이 깨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잘 있어야 저도 잘 있습니다. 어쨌든 아무리 맛있는 ‘생맥’이라도 그들도 생각해서 적당히 마셔야겠습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잊으면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법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10년 후를 기약하며


맛깔나게 글을 쓰시는 주위 교수님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BT뉴스가 나올 때 마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14년 만에 지면을 통해 우리 생물공학회에 인사를 하는지라 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요즘 대세인 ‘먹방’을 떠올려, 글을 쓸 때 싱싱한 국산 해물이 잔뜩 들어가면서도 맛깔난 토종된장 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부산식’ 해물 된장찌개를 도전했습니다. 마감 날을 어겨가며 간을 맞추고 이리저리 노력을 했지만, 결과물은 아쉽게도 여느 호텔식 ‘미소’국으로 느껴집니다. 아직 시야와 경험, 특히 우리말 실력이 크게 부족합니다.
건강과 웃음으로 또 다른 마라톤 하나를 끝냈을 10년 후, 다시 BT뉴스를 통해 좀 더 성장한 제 모습을 우리 학회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KTX를 타고 서울을 가면서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김영사, 2018)를 읽습니다. 100세 철학자의 겸손하면서 부드러운 글 솜씨와 깊은 마음 씀씀이에 감사함과 부러움을 느낍니다. 또한 다음의 글 쓸 용기를 냅니다. 바쁜 시간에 짬을 내어 부족한 제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로마식 인사말 “Sivales bene valeo”을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