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로서의 나눔의 가치
Date 2018-10-07 00:31:4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785
최진하
연구교수
서강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jinhachoi@sogang.ac.kr

지금으로부터 약 한달 전, 성균관대학교 엄숭호 교수님으로부터 BT News 안의 ‘젊은 BT인’ 원고를 의뢰받고, 잠시 동안 고민했다. 내 연구자로서의 역량이나 경험이 누구에게 보여주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연구적 능력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재주나 경험도 없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혹시라도 내 부족한 경험이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나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바람에서다. 또한, 글을 작성하면서 그 동안 내가 생각하거나 느낀 바를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그 동안 내가 진행한 연구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전공 선택의 계기


돌이켜보면, 전공 선택에 있어서 변곡점이 될 만한 큰 계기는 없었다. 누구나 다 그랬던 것처럼, 어렸을 때에는 내가 대학을 진학하는 날이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척 형네 집에 놀러 가면 내가 보던 교과서와는 다른 두껍고 글씨도 작은 교과서들과 코피가 묻은 휴지가 어질러져 있는 형의 책상을 보면서 ‘나도 결국 고3이 되고 수능을 보겠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시간이 멀게만 느껴졌었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공을 선택해야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막연하게 나에게 ‘과학자’라는 꿈을 심어주셨지만, 막상 나는 과학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어느 분야를 선택할지에 대한 생각을 빨리 시작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선택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 당시 수능을 보기 위해서는 과학 과목 안의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공부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의 결정이 전공 선택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나는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이 일으키는 변화가 결국 보이는 것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화학’이라는 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결국 전공을 ‘화학 공학’으로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화학 분야에 대한 관심은 결국 현재 연구하는 나노공학, 바이오공학 분야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전공을 선택했지만, 예상 외로 대학 생활 동안 전공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화학 공학의 의미를 ‘화학의 공학적 접근’으로 이해하고 선택했지만, 막상 대학에서 중점적으로 배운 것은 석유공학에 방점을 둔 접근법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는 화학 보다는 물리에 가까운 전공과목들이 더 많았고, 내가 가진 화학 공학에 대한 개념과 달라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주위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보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생 때 수강했던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 등의 과목을 통해 생물학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존의 전통적인 학문의 개념에서 벗어나, 각 분야의 지식을 함께 이용하는 융합 분야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서강대학교에서는 화학공학이 화공생명공학으로 바뀌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융합 분야를 접할 수 있었고, 또한 부전공으로 바이오융합학과도 있어서 융합학문에 대한 접근이 비교적 쉬웠다. 비록 부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전공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필수 과목을 수강하면서 융합 학문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융합 분야를 연구하시던 교수님 중에 나노 물질을 이용한 바이오센서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오병근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교수님의 친절하신 안내를 받아 나노바이오공학에 입문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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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학위과정 중 최정우, 오병근 교수님 연구실 동료들과 학회 참석 모습

 

지금까지의 연구의 발자취


대학원에 들어온 뒤, 처음 진행했던 연구는 나노 입자를 이용하여 바이오센서의 정확도와 민감도를 향상시키는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박사학위 과정과 박사후 연구원 기간 동안 주로 연구했던 분야였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 실험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많은 어려움 중에 첫 번째로 겪었던 것은 창의적으로 생각하여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그것을 프로젝트로 기획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받았던 강의 중심의 주입식 교육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 도출에 대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물론 지금도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여전히 겪고 있으며, 연구하는 내내 씨름해야 하지만 돌이켜보면 학위 과정 당시에는 벽에 부딪친 것 같이 막막했다. 두 번째는 프로젝트 시작 당시에 세워놓았던 가설과 다르게 연구결과가 나오는 부분에서 많은 마음고생을 하였다. 이것도 나뿐만 아니라 같이 연구했던 모든 선, 후배에게서 동일하게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의 그 괴로움이란 정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학위를 마치고 졸업한 동료들이 한 달만 지나도 혈색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여럿 보았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실험 디자인에 대한 접근법이 많이 조심스러워지고, 실험 기술이 늘고, 논문 등을 통해 사전조사를 더욱 철저히 하는 등의 노하우를 하나씩 체득할 수 있었지만, 이 과정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학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참을성이나 끈기, 의지와 같은 것들이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노바이오센서는 다양한 기술의 접목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이다. 나노 물질에 대한 특성이나 합성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측정하고자 하는 바이오 물질의 성질을 파악해야 하고, 측정 방식에 대한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지도교수였던 오병근 교수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의 바이오센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셨고, 때로는 다른 연구자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해법을 제시해주기도 하셨다. 이를 통해 서로간의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공동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습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학위과정 동안 나노바이오 센서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박사과정의 학위논문 주제인 나노 물질을 이용한 암 세포의 효과적인 사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학위 과정동안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고 경험한 것은 지금 돌아보면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늘리기 위해 참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나노입자의 합성 과정, 암세포 사멸 유도 및 시너지 효과를 연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제 지도교수님과 성균관대학교 엄숭호 교수님, 또한 주변의 많은 선, 후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결국 성공적으로 학위를 마칠 수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혼자 진행하는 것 같고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많은 교수님 분들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학위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발표된 연구 논문에 다수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거의 모든 연구자들도 나와 같이 서로의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박사학위를 마친 후, 동일한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나노 물질을 이용한 나노메디컬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였다. 또한 연구실 후배들이 미생물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여,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연구실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군 의무를 마친 후에는 감사하게도 서강대학교 최정우 교수님과 지도교수인 오병근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과 럿거스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 주로 연구한 주제는 미세유체칩을 활용한 organ-on-a-chip 분야였다. 기존에 진행했던 나노입자를 활용한 연구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미세유체칩이나 세포 배양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 수 있었으며, 관련 기술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진 나노 바이오센서 기술과 융합하여 센싱 모듈이 결합된 미세유체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미국 생활에서도 익숙지 않은 전공에 대한 어려움, 의사소통에 대한 어려움 등이 있었지만, 미국 지도교수님들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의 박사후 연구원과 학위과정에서의 연구경험을 살려서 서강대학교 최정우 교수님 연구실에서 나노 바이오센서, 미세유체칩, 바이오로봇 등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또한 연구교수로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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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미국 Rutgers 대학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이기범 교수님 연구실

 

연구자로서의 목표


얼마 전, 생에 첫 대학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학부생 시절 학원 강의나 과외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대학 강의’가 나에게 주는 무게감이나 의미는 많이 달랐다.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인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교수가 되는 것을 연구자로서 일차적인 목표로 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를 맡아서 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고, 이것을 계기로 삶의 목표에 대해 다시 정립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삶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나 자라온 문화,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적은 삶을 이끌어가는 동기부여가 되어 각 개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연구를 진행하고 이끌어가는 힘도 각 개인이 동기 부여된 정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며, 그 이유와 정도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동안 융합분야의 다양한 교수님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동기 부여라는 단어이다. 동기부여가 잘 되어있는 학생이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고, 반대로 동기부여가 약한 학생은 반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격려해주고 리마인드시켜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개인이 스스로 동기 부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연구자로서 동기부여에 필요한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수라는 직업을 얻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인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단기적 목표라면 몰라도 삶의 목적이 되어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나에게 교수라는 직업은 내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보다는, 내 삶이 통째로 이끌려가는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그 동안의 내 연구 경험과 지금 진행하고 있는 강의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때, 연구자로서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나눔’ 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내 학위과정과 지금 박사후 연구원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목시키는 융합연구를 주로 진행하였고, 여러 교수님들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작게나마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강의를 맡아서 진행할 때나 후배들의 연구를 도와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주도록 항상 노력하며, 또 그것이 굉장히 보람된 일이라고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눔’ 이라는 가치가 연구자로서의 내 삶에 많이 침투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것을 연구자로서의 삶의 목적으로 삼기에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미 모든 연구자들이 서로 도와주는 것을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연구의 목적이 나눔이 되었을 때의 순기능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인류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주변사람들과 좀 더 즐겁게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최근에 연구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 ‘정직한 연구’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연구의 시작과 동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라면, 조급하고 무리하게 연구를 진행해서 결국은 부정에 이르는 상황은 많이 없어지지 않을까? 나눠주기 위한 연구에는 ‘가짜 결과’는 있을 필요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굳이 더 좋은 직업이나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기 보다는 지금 맡은 위치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구에 대한 노력이나 열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눔에 목적을 두었을 때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의 열정이 회복되고, 맡은 연구에 성실해야 할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배워서 남 주나?’ 라는 말은, 배움에 힘쓰면 결국 본인이 덕을 누린다는 관용표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맞는 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배우게 되면 남에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왕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연구의 목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나눔’에 두는 것은 어떨까? ‘배워서 남 주자‘ 라는 적극적인 나눔이 내 삶의 동기가 되어 이끌어간다면, 지금보다 좀 더 감사하게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흔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앞으로 내 연구자로서의 삶이 주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