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의 과학자로 성장하기 까지
Date 2019-04-09 15:13:44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933
이진영
연수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jylee84@kribb.re.kr

처음 한국생물공학회 젊은 BT인에 원고 작성 권유를 받고 부담과 동시에 정말 오랫동안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살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박사 졸업 후 연수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많이 배우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의 스스로에게 묻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는 소홀해 왔던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면서,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과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다잡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한 명의 과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어린 시절 만들었던 자기소개 엽서의 장래 희망을 적는 란에 과학자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 당시 재미있게 본 TV 프로그램(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자연관련 다큐멘터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중요한 부분에서 갑자기 화면을 멈추고 문제를 냈을 때 뒷부분을 상상하고 맞추는 것이 정말 즐거웠고, 단순한 퀴즈프로그램이 아닌 생명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잘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중고등학교 과정 동안 과학, 특히 생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과목이 되었고, 그 관심이 결과적으로 이후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전남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진학하였고, 그동안 해보지 못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냈다. 특히 학과 내 표본 연구회 활동과, 조류학(Algae) 실험실에 소속되어 교수님, 선후배와 함께 생활하고 보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이 되었고, 대학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이 시기의 많은 친구들은 생물 관련 진로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그 시절에 고민은 많았지만 다른 진로로 방향을 바꾸기 보다는 관련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
었던 듯하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몇몇 관련 회사에 원서접수를 하였다. 연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생물 관련 RND 분야로 지원했지만, 회사에서 찾는 인재상은 생각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스스로도 관련 분야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입사 지원했던 한 회사의 경우, PPT 면접이 끝나고 한참을 질의응답 후에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다. 그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만화 슬램덩크 정대만의 명대사처럼 ‘연구가(농구가) 하고 싶습니다!’ 였지만, 면접관들에게 그 만큼의 절실함을 어필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하고 있던 도중 감사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실험실 인턴생활을 하면서 관련 분야의 경험도 쌓고 앞으로의 진로도 결정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아 실험실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학위과정을 마친 전남대 분자미생물학 실험실은 미생물에 대한 생리학적 이해와 공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자생물공학적 기술 원리와 방법을 이용하여 자연계에 존재하는 방대한 유전자원의 활용을 위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실제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실험실의 학생 수만큼 각각 다른 연구과제가 수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처음 랩미팅에 참여했을 때의 충격도 기억한다. 교수님과 발표하는 학생들이 서로 외계어(실제로는 심도 있는 논의)를 주고받는데,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멍하게 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학부 과정 동안 배웠던 내용들은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기본을 다지는 수준에 불과했고, 계속해서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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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전남대 분자미생물학실험실 김근중 교수님과 학위과정을 함께한 실험실 식구들

 

학위과정은 여러 실패 또는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배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기초적인 분자생물학적 기법인 PCR 하나만 하더라도 특정 DNA를 증폭하는 목적 또는 연구 목표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반응 조성물의 조건이나 실험자의 습관과 같은 작은 차이가 DNA 증폭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것은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간단한 실험에서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이후의 실험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르게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이 되었으며, 또한 어떤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거나 잘 나오지 않았을 때, 거기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좋은 결과 또는 흥미로운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실제 처음 수행했던 연구과제가 이런 케이스였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인디칸이라는 배당체를 이용해서 특정 생리활성물질을 미생물을 이용한 효소 반응을 통해 합성하는데, 두 가지 효소 반응을 통한 전환 경로를 설계하고 실험을 수행한 결과, 두 효소를 이용한 반응은 과량의 부산물과 함께 목적 산물이 생성되었고, 효소를 넣지 않은 대조군에서 엉뚱하게도 소량이지만 부산물이 거의 없는 형태의 목적 산물이 생성되었다. 대조군에서 목적하는 물질이 나오자 처음에는 실험을 잘못 수행한 것으로 생각하고 단순 반복 실험을 하다가 계속해서 유의한 결과를 얻게 되자 분석을 수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야생형 대장균으로부터 생리활성물질을 생산하는 방법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효소가 갖는 특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편견에 빠지기가 쉬운데, 편견 없이 결과를 해석하고 공부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주된 관심 연구 분야는 당시 화두가 되었던 합성생물학 분야로, 크레이그 벤터가 합성한 유전체를 이식하여 스스로 생장 가능한 최초의 미생물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합성생물학이 매우 중요한 연구 분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 특히 유전자회로에 대한 연구 동향이 ‘Science (2011)’에 특집으로 실렸고, 유전자원의 합리적인 설계를 통해 목적하는 기능을 갖고 동시에 제어가 가능한 새로운 미생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랩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갖는 유전자회로를 개발하고 이를 평가하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유전자 회로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회로를 설계하고 예상되는 출력(pattern)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지만, 실험실에서는 실 응용을 고려하여 유전자회로를 설계 및 개발하고, 이들 회로의 기능성을 평가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유전자 발현 회로를 개발하였고, 이를 접목하여 암 치료목적의 인공 세포 개발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짧은 학위과정이라 마지막 단계까지 모든 연구를 수행하진 못했지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연구 분야가 되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또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학위과정동안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힘들었지만 배움에 즐거움이 있었고, 그 결과, 학위과정동안 다양한 연구 활동(보고서, 연구동향 작성, 학회 발표, 워크숍 등)을 경험하였으며, 논문, 특허와 같은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었다.

 

 

성장은 여전히 진행 중


학위과정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자, 현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수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기관이지만 학교와 같은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다양한 전공을 갖고 계시는 박사님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분야의 연구 경험과 결과를 해석하는 시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실험실 시스템과 여러 가지 장비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나는 효소 공학, 미생물 발효, 합성생물학에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여전히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며 성장하고 있다.
서두에 던졌던 어떤 연구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열심히 사는 것’,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단순 명료한 답이지만 막상 그렇게 꾸준히 살기는 쉽지 않고, 또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이글을 쓰기 전까지 나 또한 그런 마음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학위과정을 막 시작했을 때, 결혼을 하고 독립했을 때, 졸업하고 새로운 곳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누구나 스스로 다짐하고 계획했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연구 인생의 길이 보이고, 삶의 방향 또한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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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 박사님들과 실험실 식구들

 

 

글을 마치며


박사라는 타이틀을 받고, 또 한 명의 과학자로 연구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우연(또는 필연)과 선택이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고민하고 도와준 좋은 선후배님들과 지도 교수님 그리고 동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항상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가족과 친구들, 힘들 때마다 함께 고민하고 늘 곁에서 응원해준 와이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시기에 알맞은 선택지가 있었고,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 했었기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연으로 함께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과, 젊은 BT인에 기고할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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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 19-08-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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