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Date 2019-10-05 20:08:3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54
안정웅
연수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 전문연구단
jungung89@kribb.re.kr

글을 쓰기에 앞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연구자가 되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고, 또 이런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젊은 BT인’원고를 부탁 받았을 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하게나마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글을 써볼까?’생각을 했지만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원 생활을 한지 1년도 안된 햇병아리 연구원인 제가 전문적인 지식이나 학문을 전달하기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다른 분들처럼 멋진 글을 쓰기에는 글재주가 없어 다소 재미가 없는 글 일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생물을 배우다. 

 

중고교 시절, 저는 학업을 중요시 하지 않았고,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었습니다.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격고 있었죠. 학교를 가면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장래희망도 없이 시간을 허비했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어떤 학문에도 출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과’와 ‘문과’의 선택을 사이에 두고, ‘어디로 진학을 해도 상관이 없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암기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저였기 때문에, 암기과목이 많은 문과보다는 수식을 풀이하고, 현상을 공부하는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이유로 이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기점으로 제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 생물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무섭고,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처음에 생물을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는 단지 엄격하고 무서웠던 생물선생님께 혼나기 싫어서 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물이란 학문에 매료되기 시작했고, 살아
있는 수많은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자연이 순환되고 있는지, 체내에서 보이지 않는 유전자가, 세포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것이 너무 즐겁고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혹자들은 생물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냐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생물은 실제의 현상을 바탕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매우 심도 있는 학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것이 ‘생명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생물은 이해하면 할수록 신비하고, 오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공부에 흥미를 느꼈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3학년이 되었을 땐, 대부분의 학생들이 심화과정을 화학II 또는 물리II를 선택을 했지만, 생물을 집중적으로 알고 싶었던 저는 생물II를 선택하게 되었고, 전교에서 유일하게 생물II를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공부에 욕심이 생겼고, 대학을 가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4년제 대학은 꿈꾸지 못할 성적을 가진 저였기에 거의 체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물 성적으로만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수시전형을 알게 되었고, 운이 좋게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래를 세우다.


대학교를 입학하여 생물학과에 진학하면서, 오로지 생물만 공부하게 되었을 때,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몰랐던 생물이란 학문이 얼마나 넓고, 세분화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고, 다양한 실험 강의를 통해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연구원으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학부연구원을 시작하면서였습니다. 그 때는 ‘식물생리생화학’연구실에서 식물에 존재하는 천연물 추출과 그의 효능을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하였고, 구체적으로 콩에서 적혈구를 응집시키는 작용을 하는 렉틴 (lectin)이란 물질을 정제하고, 그 특성을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콩을 갈아 단백질을 정제하고, 다양한 혈액에 대한 응집력을 확인하는 매우 단순한 연구였지만,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학습하고, 실험한 첫 연구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때의 들뜸과 열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연구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 그 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이 후 다양한 강의와 연구를 통해, 생물의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와 자연계에 대부분의 대사를 촉매 하는 ‘효소’에 흥미를 가지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세부전공으로 ‘분자효소공학’을 선택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주변 누구도 제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공부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렇게 연구원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며 한발 씩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아직도 대학원 진학을 위해 홀로 서울로 올라온 그때의 설렘이 생생합니다.
20대 초, 서울에 대한 궁금증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된다는 막연한 두려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나름 대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학원 진학 일주일 만에 제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초반의 대학원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각자 맡은 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라는 감탄만 나왔었습니다. 대학교 때는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갖춰진 ‘도시’같은 환경에서 공부를 했다면, 대학원은 능동적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정글’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사 초반에는 ‘제가 선택한 이 길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고 하루에 수십 번 생각이 들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고 막히거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면 막연한 두려움과 슬럼프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꿈꾸던 미래를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많이 성장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었으며, 시야가 넓어지고, 도전정신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신감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도교수님과 동기, 선, 후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루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학원 시절을 함께 지낸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하는 연구를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소통, 그리고 신뢰를 쌓는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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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대학원 사진 



꿈은 이루어진다.


대학원 과정 동안, 인간을 포함한 고등생물 내에서 면역, 방어기작, 항염증, 항상성조절 등 다양한 생리활성에 관여하는 신호전달물질의 일종인 옥시리핀 (oxylipin)이란 물질과 이와 관련된 효소인 지방산화효소 (lipoxygenase)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동물에서 분비되는 옥시리핀은 지질조절제 (lipid mediator), 자가치료조절제 (Specialized pro-resolving mediator)라고 불리며, 이미 1980년대부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왔고, 최근에는 외부감염, 면역, 염증반응과 관련되어 자가치료물질로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물질들은 ‘감염성 및 대사질환’에 대한 ‘치료물질’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생체 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앞으로 ‘화학약품’을 대체하는 ‘차세대 의약물질’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옥시리핀은 생체 내에서 극소량 만들어졌다가 빠르게 분해되기 때문에 물질의 확보가 어렵고, 생체 밖에서 유의적인 생산을 확인한 연구는 진행된 바가 없습니다. 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옥시리핀을 생체 밖에서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법’을 개발하고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생물에서 지질조절제의 일종인 헤폭실린 (hepoxilin)과 트리오실린 (trioxilin)을 생합성할 수 있는 효소를 확보하였고, 총 10가지의 지질조절제를 생물전환법을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생합성하였으며, 그 중 5가지의 물질이 페록시좀 증식체 활성화 수용체 (PPARr)에 작용하여, 인슐린의 분비를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대사질환인 당뇨병 치료물질로서, 기존의 화학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천연 치료물질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지질조절제의 생합성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로 박사학위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고, 대학원 진학 6년 만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현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합성생물학 전문연구단’에서 효소공학 전공자로서 연수연구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생명과학기술 분야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기관으로 오래전부터 입사를 꿈꿔 왔습니다. 특히, 합성생물학 전문연구단은 합성생물학과 효소공학의 메카로써, 응용 및 시스템 생물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문을 접목하여, 다양한 전공을 연구한 선배 연구원님들과 동료 분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아직 접하지 못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배우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유전자회로 (genetic circuit)로 구축한 바이오센서(biosensor)를 이용한 특이 활성 효소 탐색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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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연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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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입사 후 사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지만, 여전히 부족함과 학문에 대한 갈증을 느낍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타인의 지식에 의해 박식해질 수는 있으나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말 그대로 꿈이었던 연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타인이 밝혀낸 지식을 기반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명의 어엿한 연구자로서 편견을 두지 않고 넓은 시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새로운 시각, 열정적인 도전정신으로 연구에 임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연구자가 되어보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이며,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하여, 제가 받은 것만큼 후배 연구원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슨 내용으로 써야하나 고민하였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많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모든 BT인들 그리고 독자 분들의 연구가 모두 잘 되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