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인으로서 성장기
Date 2019-10-05 20:18:13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533
양윤정
교수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yj.yang@inha.ac.kr

‘그 동안의 인생사와 새로운 막을 여는 다짐’ 이라는 에세이 주제를 받고, 진로를 고민하던 상황과 그때의 마음가짐을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 기고는 새로운 시작에 앞서 다시금 저의 초심을 생각해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BT News 편집위원회에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던 때를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문과와 이과 중 선택해야했고,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에 더욱 고민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시대회 부상으로 외국에서 과학 탐방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교와 과학박물관을 견학하면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국의 과학기술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자국민의 자긍심과 국력은 과학기술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다면, 더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과학캠프에 참여하였던 경험도 제 진로선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고등학생 신분인지라 실험을 수행했다고 이야기 하긴 힘든 수준이였지만, 과학자/공학자로의 진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생활에 적용되는 응용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공학자로서 진로를 진지하게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로 진학하였고, 화학공학을 복수 전공하였습니다. 식품공학, 생명공학, 화학공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교과목을 두루 이수하며 졸업할 때 쯤에는 한 가지 현상과 사물에 대해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은 최우석 교수님의 ‘공정해석 및 설계’ 강의였습니다. SuperPro 프로그램을 배우고 다루며 직접 공정을 설계해봄으로써 양론, 물질 수지, 반응 공학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생물공정공학에 대한 이해가 압축된 수업이었고, 흥미를 크게 느꼈던 강의였습니다. 그 수업을 계기로 보다 다양한 시스템에서의 단백질 생산과 응용 및 활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겼습니다.



단백질 기반 바이오 소재 개발


저는 바이오 소재로서의 단백질을 연구하시던 포항공대 차형준 교수님 실험실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대장균 유래 인공 단백질의 생산 및 응용을 주로 연구하였습니다. 구제적으로는 홍합 융합 단백질에 관한 연구, 홍합 족사(足絲)의 실크 유사 단백질에 관한 연구, 누에 실크 기반 바이오 소재개발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말미잘 유래의 실크 유사 단백질에 관한 연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연구하던 Nematostella vectensis라는 스타렛 말미잘은 작은 충격에도 몸을 1/10 수준으로 수축시키고 다시 이완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 택배로 말미잘을 받을 때에는 새끼 손톱만한 작은 콩벌레처럼 보였는데, 다음날 아침에 가서 확인해보니 손가락 길이만큼 뻗어 있었습니다. 택배 이송시에 흔들림이 말미잘에게는 충격이 되어 몸을 웅크린 상태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피부를 극도로 수축, 이완시키는 말미잘의 행동에서 엘라스틴-실크 유사체와같은 단백질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실크 단백질은 수세기 이용되어 온 천연 고분자로, 누에 실크의 경우 상처를 꼬매는 봉합사 등과 같이 인체에 적용 시 거부반응이 적은 바이오 소재로써 응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열의 변화를 유도하기 힘들고, 화학적 치환이 제한적입니다. 이에 기능적 다양화를 위해 재조합을 기반으로 한 실크 소재의 응용연구가 수행되고 있습니다. 재조합 기반의 실크소재의 경우는 거미의 실크를 모사하는 연구가 대부분이였으며, 다른 생물종에 대한 연구는 수행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실크 단백질의 물성이 유전 서열과 종(種) 특이성에도 영향을 받는 만큼, 다각화된 응용과 물성의 발견을 위해서도 다양한 종 유래의 단백질 공학의 필요성이 강조되야 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말미잘은 거미실크, 누에 콜라겐 단백질과 서열 유사성이 높은 단백질 서열을 가지고 있었기에 연구에 유망한 후보군이라고 판단하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미잘 유래 실크단백질은 선행연구가 없었던 새로운 분야입니다. 따라서 가설대로 말미잘 안에 섬유성 실크 유사 단백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말미잘 조직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것부터 연구가 수행되었습니다. 단백질의 존재, 단백질 서열의 탐색을 시작으로 공학적 생산에 유리한 형태로 유전 서열이 새롭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얻어진 단백질의 생합성과 분리추출법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도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에도 기다려주시고 독려해주신 차형준 교수님 덕분에 실패한 연구 결과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마음의 부담없이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유성 교수님께서도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의견을 주시고, 함께 논의해 주신 덕에 미숙했던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문헌을 읽게 되었고, 다각도로 시도를 해보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생산된 단백질은 섬유형태로 제조가 되었고, 같은 분자량을 갖는 인공 실크 단백질과 견주었을 때도 경쟁가능한 기계적 물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나노 시트, 하이드로젤 등의 제조물로 다양하게 제조를 함으로써, 단백질의 가공 및 제조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시도를 통해 얻은 말미잘 유래 하이드로젤이 피부 또는 인공 관절의 물성을 충족시킨다는 결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조된 스캐폴드가 세포의 생육 및 성장에 저해되지는 않는지, 그리고 피부 이식시에 유발되는 독성이나 면역반응은 없는지도 세포 및 동물실험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이렇듯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인공 단백질의 디자인, 생산, 제조 및 특성분석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과 특허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본 단백질의 기술이전까지 완료가 됨으로써 재조합 단백질의 개발과 응용에 대한 처음과 끝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갚진 기회였습니다. 되돌아보니 유전 정보를 찾아내는 일부터, DNA-단백질-소재에 이르기까지 넓은 연구 시도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가능했던 것은 홍합접착단백질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 온 연구실의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선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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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포항공대 차형준교수님 20주년 행사

 


생체 시스템 모방 연구


졸업 이후에는 박사 후 연구원 과정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박사 재학시절 재조합 단백질과 천연 폴리머 기반의 연구들을 주로 수행해 왔던 터라, 접하지 못한 새로운 소재와 접근법을 배우는 것이 향후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MIT 화학공학과 Bradley Olsen교수님 실험실에서 핵공막을 모사하는 합성 폴리머 기반 하이드로젤 개발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돌연변이를 통한 단백질 하이드로젤 개발 연구, 단백질 합성의 자동화 시스템, 핵공막 단백질의 특성 분석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핵공막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특정 크기 이상 (~5 nm, 40 kDa)의 생체분자의 유입을 entropic repulsion에 의해 차단합니다. 하지만, 특정 생체분자의 경우에는 이 반발력을 통과하여 핵공막 안으로 유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핵공막 단백질이 특이성이 있습니다. 반발력을 이기고 물질이 통과하는 기동력은 핵공막 단백질과 이동 분자간의 선택적 친화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핵공막단백질의 선택적 분리능을 모사하기 위해 큰 구동력인 entropic repulsion과 물질-핵공막 단백질간 친화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를 폴리머-펩타이드 기반의 하이드로젤로 모사하였습니다. 디자인 된 하이드로젤들은 같은 이동물질이라 하더라도 컨쥬게이션 된 하이드로젤의 이동물질과의 친화도에 따라서 강력한 막으로써 작용하기도 하고, 또는 친화적인 바인더로써 물질이동을 촉진시키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항체 중에서도 한 가지의 항체만을 분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이후로 핵공막 단백질의 consensus 서열의 돌연변이를 이용한 물질 수송능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박사 학위간의 연구가 물질 자체를 개발/모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박사 후 연구원으로 수행한 연구는 자연상의 시스템 자체를 모사한 연구입니다. ‘모사’라는 큰 흐름은 같으나 연구에 대한 접근 방식과 해석 과정이 달라 그 안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실험실 인원의 몇명은 이론 연구 및 시뮬레이션을 하였는데, 관련 분야에 이해가 없었지만 궁금증이 생겨 퇴근을 해서는 독학으로 코딩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Olsen 교수님은 책을 추천해 주시거나, 본인의 책을 빌려주시며 독려해주셨습니다. 통달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주변 포닥이나 공동연구자들과 디스커션을 하고 개념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Oak Ridge연구소에서 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을 해야 했었는데, 그때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구 결과 해석에 대해 수학과 모델이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접근방법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이 의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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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MIT Bradley Olsen교수님 실험실 apple picking day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같이 했던 공동연구입니다. 제가 합류하였을 때에는 과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연구였습니다. 짧은 기간 맡은 프로젝트였지만, 이 연구 기회를 통해서 경험이 없던 반응성 폴리머의 합성과 분석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업과제는 처음었던 지라 전반적인 산업의 흐름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랩에서 얻어진 물질을 추가적으로 기업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분석하는지 알 수 있었고, 출장을 통해 회사 랩을 탐방하면서 랩과 회사와의 간극이 어떠한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포스닥 기간 동안 랩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연구를 할 기회가 보다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와 협업하여 연구를 진행하며 제 지식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 역시 평소 저와 다른 분야의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전문적 영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흥미로운 연구를 할 수 있게 많은 기회를 주신 Olsen 교수님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무리 글


이제 연구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들어 후배들이 이런 저런 고민으로 상담을 요청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 스스로도 같은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떤 대답이 당시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몇 년 동안은 잊고 지냈던 대학원에서의 일상들을 되새겨 보면서 어떤 멘토의 자세로 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상생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잠시나마 제 옛 기억을 돌이켜보니,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어떤 예시든 모두 제가 앞으로 바라는 이상향을 그리는 데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주춧돌이 될 수 있는 좋은 멘토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