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의 생명공학 기술
Date 2019-10-05 20:25:4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047
이정욱
교수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공학과
jeongwook@postech.ac.kr

프랑스의 생화학자이며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1895)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하지만 뛰어난 과학적 발견은 국가의 이름으로 기억된다.”[1] 생물 공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어서, 뛰어난 과학적 발견은 단순히 기억되는 것을 넘어서서 국가를 만들기도 할 만큼의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벨로루시가 고향인 채임 와이즈만 (Chaim Weizmann, 1874-1952)은 유대인 박해로 고향을 떠나 스위스와 독일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1904년부터 영국 맨체스터의 유명한 화학자인 윌리엄 펄킨 (William Perkin, 1863-1945) 밑에서 수학했다. 그 시기에 그는 합성고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틸알코올을 생산하는 클로스트리디움 아세토부틸리컴 (Clostridium acetobutylicum )을 이용하여 당에서 아세톤과 부탄올의 혼합물을 얻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2]. 그러던 그는 1915년 영국의 군수장관이던 데이빗 로이드 조지 (David Lloyd George, 1863-1945)의 눈에 띄게 되어, 군수물자 중 하나이던 아세톤 부족을 해결하라는 특명을 받는다. 당시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중이라 폭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니트로셀룰로스가 부족했는데, 아세톤은 이 니트로셀룰로스를 만드는 용매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아세톤은 나무를 밀폐된 용기에 넣고 가열하여 생성되는 증기에서 추출하여 만들었는데, 공정의 비효율성과 대량의 목재를 전쟁 중에 수입하는 문제가 맞물려 있어, 아세톤을 자국 내에서 대량생산하는 것이 영국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채임 와이즈만은 클로스트리디움 아세토부틸리컴 균주를 이용하여 당을 발효시켜 아세톤, 부탄올 및 에탄올을 얻는 발효법을 개발했는데, 이를 ‘acetone-butanol-ethanol (ABE) fermentation’이라 부르고 그 공정을 ‘Weizmann process’라 부른다 [2]. 이를 통해 아세톤을 대량으로 확보하게 된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었다. 그 후 영국 수상의 자리에 오른 로이드 조지는 채임 와이즈만에게 어떤 보상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물었고, 그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의 수립을 지지해 달라고 하였다. 로이드 조지 수상은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얼 밸푸어 (Earl Balfour, 1848-1930)와 논의 했고, 유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1917)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3]. 마침내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되고 채임 와이즈만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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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개정 전 이스라엘의 50리롯 화폐에 들어있는 채임 와이즈만의 사진 (왼쪽) 및 그가 acetone 생산을 위해 사용한 Clostridium acetobutylicum (오른쪽, [3])

과학계의 대표적인 세렌디피티(Serendipity, 의도하지 않은 발견, 뜻밖의 운 좋은 발견)의 예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페니실린은 수백 만 명의 목숨을 살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류사 최근 100년간의 위대한 발명을 꼽는 질문에 항상 언급되는 발명인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기여한 공로도 있다. 1944년 6월 6일 동맹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배경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페니실린이다. 당시 부상병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한 항생 물질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페니실린은 전쟁 중인 군인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1943년경 대량 생산에 성공함으로서 노르망디 작전에 극적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4]. 페니실린이 있기 전에는 총상 등을 입고 부상당한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팔, 다리와 같은 상처 부위를 잘라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때문에 총상이나 부상이 빈번한 상륙작전을 앞두고 있는 군인들에게 페니실린의 존재는 사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페니실린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 (Alexander Fleming, 1881-1955)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포도상구균 배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는데,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 우연히 배양접시에 발생한 푸른곰팡이 주위가 무균 상태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5]. 그는 푸른곰팡이 (Penicillium notatum )의 배양물에는 여러 가지 세균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페니실린(Penicillin) 이라고 명명하였다. 페니실린은 옥스퍼드 대학의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러리에 의해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친 후, 록펠러 재단 및 미국정부의 연구기금을 받고, 당시 유수의 화학회사인 머크 등과 같은 회사의 협력으로 1943년부터 대량생산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한 것을 보면 페니실린도 결국 세계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생명공학 기술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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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알렉산더 플레밍, 에른스트 체인, 하워드 플로리 (상단 왼쪽부터). 페니실린 노타텀 (상단 오른쪽) 과 그가 배양접시 상의 푸른곰팡이 주변의 포도상구균이 자라지 않는 모습을 스케치 한 것 (하단 왼쪽 [3]).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로리에 의해 상업화된 균주는 실제로 Cantaloupe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흰 곰팡이를 개량하여 만들어 졌음 (하단 오른쪽).


최근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조치가 연이어지고 있다. 2019년 7월 1일 반도체의 핵심소재가 되는 불화수소의 수출을 규제하더니, 2019년 8월 2일 한국을 우방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우리도 ‘일본의 불화수소’와 같이 수출규제로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핵심소재는 없는지 알아보았더니 대표적인 것이 디스플레이용 OLED 패널이라고 한다 [6]. 그런데 이미 불화수소 수출규제가 있기 전 2개월간 OLED 수출량이 4월 주문량을 기준으로 8개월분의 사상최고치라고 하니, 일본 정부가 단단히 조사하고 준비한 모양이다. 생명공학 기술 중에는 OLED 패널과 같이 수출규제를 해서 상대방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100여 년 전 1차 세계대전 시의 아세톤, 80여 년 전 2차 세계대전 시의 페니실린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준 기술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시의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과 투자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정부의 각오가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국민들의 여행자제나 불매운동으로 현 상황을 극복하는 것 보다는, 아세톤, 페니실린에 비견될 만한 현 시대의 첨단 기술들이 개발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몇 가지 독보적인 첨단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그 날이 바로 일본과 같은 주변 강대국이 함부로 경제조치를 할 엄두를 내지 않게 될 날이며,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1. “Louis Pasteur, Free Lance of Science (1960)”by RenéJules Dubos, Ch. 3 “Pasteur in Action”
2. https://en.wikipedia.org/wiki/Chaim_Weizmann
3. Biotechnology for beginners (2nd Edition), Academic Press (2017)
4. https://news.wisc.edu/d-day-invasion-was-bolstered-by-uw-madison-penicillin-project/ (accessed August 6, 2019)
5. American Chemical Society International Historic Chemical Landmarks. Discovery and Development of Penicillin. http://www.acs.org/content/acs/en/education/whatischemistry/landmarks/flemingpenicillin.html (accessed August 6, 2019).
6.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4/2019072400947.html (last accessed August 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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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 20-05-01 06:13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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