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km 질풍노도의 길
Date 2024-05-03 14:50:4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09
전 태 준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tjjeon@inha.ac.kr

​633km (2022.2.23-2.27)

  633이라는 숫자만 보고도 바로 어떤 의미인지 눈치를 채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도 이미 자덕의 경지에 이르렀거나, 자전거를 취미 이상으로 즐기는 분이실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전국에 퍼져있는 1,853km의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633km는 인천 아라자전거길부터, 낙동강자전거길의 끝자락인 부산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이 길을 중학교를 졸업하는 사춘기의 아들과 완주하게 되었고, 이젠 벌써 2년이 지나 기억도 가물해 지고 있지만, 아련했던 추억의 책장을 넘겨 기억의 습작을 해보려 한다.

 

5 days

  국토종주를 마무리 한지 2년이 지나가고, 가끔씩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으로 사진첩을 들추어 보기도 하지만, 당시에 느꼈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이 벌써 생활속에 묻혀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5일 동안 내내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자전거 위에 앉아 있으면서, 뼛속까지 시리는 고통과 동시에 나름 시인의 감성으로 온갖 상념에 빠졌으나 적을 길이 없어, 그 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기억속의 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나마, 간간히 전화기 녹음기를 켜고 녹음을 해 둔 것이 있어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나열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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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633km 국토종주 인증서와 국토종주 종점 아라서해갑문 633광장. 


출발

  국토종주 몇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남들이 놀지 않는 시기에 평일 3일+주말까지 통으로 비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종일 자전거 위에 앉아 있으니, 이메일이고 메시지고 볼 여유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당시 광활하게 펼쳐져 지평선 끝에 닿아 있는 대륙들을 보며, 넓은 땅에 대한 부러움과 더불어 이런 곳에서 자전거로 로드트립을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정작 5일 동안 쉴 새 없이 페달을 지어서야 겨우 종단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도 충분히 크더라. 특히 낙동강변 따라 그 흔한 아파트는 당연히 볼 수도 없고,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갈대밭에, 산세에 어디 하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역주행

  보통 국토종주 경험을 찾아보면, 남쪽 지역에 사시는 분들도 굳이 인천까지 오셔서 인천→부산 방향으로 라이딩을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아들이 중간에 포기할까 봐, 아니면 내가 포기하고 가다 말고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일이 있을까 봐, 언젠가는 집에 도착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배수진을 치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올라오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5일 내내 세찬 북서풍을 뼈속까지 맞으면서, 아 왜 사람들이 서울→부산을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나라는 편서풍 지대였다. 참고로 맞바람 특히 강풍은 지리산 업힐 보다 힘들었다.

 

무소유의 필요성

  5일 내내 자리를 비우니 불안한 마음에 일을 하겠다고, 노트북을 자전거에 실었는데, 결국 경남 창녕우체국에서 어댑터와 함께 택배로 보냈다. 1kg 이상은 족히 될 텐데, 보내고 나니 자전거에 모터가 달린 듯이 나가는 것이, 무게의 중요성을 느꼈다. 인생에선 참 뺄 것도 버릴 것도 많다. 마침 우체국에서 필자 절친의 아버지가 창녕 출신이라고 오지랖을 풀어주니, 우체국 직원 전체가 나오셔서 컴퓨터 상하면 안 된다고 정말 꼼꼼하게 포장을 해 주셨다. 친구 아버지가 늘 의리 있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는데, 확실히 창녕 분이 맞았다.

 

졸업선물

  아들을 달고 다니니,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어떻게 다 큰애가 따라오냐고, 기특하다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한 수 더 떠서, 이건 아들한테 주는 중학교 졸업선물이라고, 화답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니, 이러한 선물이 또 있겠는가? 결국 듣다 듣다 아들이 못 참았는지 한 마디 한다. “아빠 사실 이거 솔직히 선물은 아니잖아요”. 아들 입장에서 보니 선물은 아닌 듯하여, 그 때부턴 “졸업여행”이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아마 30년 뒤에는 아들놈이 아빠의 큰 선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나의 선물이기도 했다. 사실, 사춘기 아들이 선뜻 따라와 준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큰 불만 없이 5일 내내 따라와 준 것이 더 고맙다. 다만, “큰 불만”은 없었으나, 첫날은 “팔목 아파요”, 둘째 날은 “팔꿈치 아파요”, 셋째 날은 “허벅지 아파요” 넷째 날은 “종아리 아파요” 다섯째 날은 “언제 다 와요” 각각 200번씩은 들었다. 뭐 이젠 이 정도 투정이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중간에 그만두자고 할까 봐 일부러 한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는데, 종주를 마치고 나서 왜 따라왔냐고 물어보니, 경험상 아빠가 뭘 하자고 하면 꼭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끌려가는 거보다 조금이라도 자발적 마음이 있을 때 가려고 따라왔다고 했다. 그래도 아빠의 이미지는 확실히 심어주었고, 지금도 아들은 특별한 사춘기 증상 없이 아빠와의 서로 신뢰가 잘 형성이 된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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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자전거길 위의 휴식. 


바람막이

보통 자전거 동호인들이 거리에서 무리를 지어 달리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가 있는데, 이유는 앞에 사람이 바람막이를 해 주기 때문이다. 내 등만 보고 따라오던 아들에게 이를 설명해주니, 아빠가 자전거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바람막이를 해주겠다고 앞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고, 아들이 막아주는 바람에 수많은 상념과 세찬 인생의 바람막이를 아직 내가 해주어야 하는데 하고 짠하는 순간, 몇 분도 안 되어 “아빠 못하겠어요” 아놔... 결국 다시 원점으로 내가 바람막이를 해줬다. 맞바람은 매섭다. 그래도, 아들놈도 제법 커서, 바람이 없을 때면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한다. 참 많이 컸다. 그런데, 어른들이 늘 하던 말이 “젊었을 땐 돈 없어서 못 놀고, 나이 좀 들어서는 시간 없어 못 놀고, 더 나이 들면 다리 아파서 못 논다”고 하는데. 나는 돈도, 시간도 딱히 많진 않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운동을 해서 다리에 대한 믿음은 있었는데, 짐까지 실은 천근 같은 자전거로 종주할 정도의 다리는 아닌 듯하여,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애매한 상황인 듯했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운동도 많이 하고, 많이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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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바람막이를 해주는 아들. 


시작이 반

  지나고 보니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3번 정도 있었는데, 첫 번째는 자전거를 수원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부산행 무궁화호에 잘 실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두 번째는 600km는 달려야 하는데, 첫날 겨우 70km 정도 타고도, 둘째 날 천근만근 같은 몸으로 일어나는 것과 다시 출발할 때, 세 번째는 마지막 날 서울 거의 다와서,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서, 결국 진통제를 때려 넣고 마무리를 할 때. 마라톤 풀코스도 뛰다 보면 거의 결승점에 다 와서, 약 6km 정도 남았을 때 또 다른 마라톤이라고 할 정도의 고통이 있는데, 정신의 문제인지 육체의 문제인지, 아무튼 그 마지막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The Walk”라는 영화에서도 외줄 타기 곡예사가 제일 많이 실수할 때가 last three step이라고 했듯이, 뭐든 마무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종주를 하면서 특히 낙동강 자전거길을 타고 올라오면서, 우리나라에 제일 흔한 것이 편의점과 모텔인 줄 알았는데, 정말 없다. 적어도 한 30km는 이동해야 그나마 자전거길 근처 마을에 편의점이 오아시스처럼 있을 정도. 거의 매일 노숙할 뻔한 위기 때문에, 해가 지면 라이딩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룰을 단 한 번도 못 지킨 것도 이 때문이다. 뼛속까지 시리는 추위와 더불어, 가슴이 벅차오르는 야경과 석양을 덤으로 얻긴 했다. 필자가 해병대에 있을 때 지옥 주 훈련으로 잠도 못 자고 일주일 행군을 했을 때처럼, 다시는 못하겠다는 생각까진 하진 않았으나, 종주가 끝나고 다리의 고통이 사라지기도 전에, 내 손은 다른 국토종주 길을 찾고 있었고, 지난 2년간 금강, 영산강, 동해안, 제주도 뿐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등지의 자전거길을 달렸고, 아마 독자들이 이 글을 보시는 순간에도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름신

아들은 훈련이 덜 된 상태라 필자의 로드용 사이클을 탔고, 필자는 친구가 장기 임대해 줬던 모래주머니가 달린 듯한 무게의 산악 전용 자전거를 타고 종주를 했다. 하지만, 국토 종주 길에서는 다양한 도로를 만나게 되었고, 특히 농로와 비포장과 자전거길이 배합된 곳에서는 로드 사이클이나 산악자전거 모두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말이 길어진다. 아마 합리화는 수백 가지도 가능할 듯한데, 거두절미하고 국토종주가 끝나고 한 달도 안 되어, 금 값이 역대 최고라는 핑계로 애들 돌 반지를 팔아서 전천후 그래블(gravel) 자전거를 질렀다. 그리고, 해외 원정을 위해 3단 접이식 자전거도 구매, 장마철을 핑계로 실내 자전거까지, 자전거 부자가 되었다. 그냥 아내에게 매일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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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해무리(halo), 경남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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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가창오리 떼의 군무, 금강하굿둑.

 

 

에필로그

  필자가 당구에 한참 빠졌을 때 식탁 위의 모든 그릇이 당구공처럼 보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어디를 가든 모든 길이 자전거 길로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기에, 학회, 출장 등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자전거 탈 만한 길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심지어 자전거를 가져가서 짬을 내어 타고 오기도 한다. 마라톤을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책에서도, 마라톤 완주 후 발바닥에 부풀어 오른 물집이 아물기도 전에, 다음 마라톤을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라톤을 오랜 기간 즐겼던 필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나, 자전거 여행은 또 다른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고 알게 된 사실인데, 보통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도로는 차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작고,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어서, 도시와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에도 신탄진을 떠나 금강하굿둑까지 금강자전거길을 타고 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조우하게 되었다. 석양에 비친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우연히 맞이하는 벅찬 감정은 어떤 글로도 표현이 어려울 것 같다. 당시의 감동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필자의 Instagram(@semper21)에 가창오리 떼 군무 동영상과 자전거길에서 만난 풍경 사진을 담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