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의약품 생산인력 양성 시스템을 고민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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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2025-03-31 12: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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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업무 차 미국 Virginia주의 Elkton에 있는 Merck & Co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공정개발을 하고 있던 프로젝트 리더를 만나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계획된 배양공정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바이오리액터가 10여대 놓인 실험실로 들어갔다. 바이오리액터의 오퍼레이션은 프로젝터 리더의 몫도, 그와함께 일하는 연구원의 몫도 아니었다. 60대는 훌쩍 넘어보이는 외모의 할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15리터 바이오리액터에 기본적인 공정 파라미터를 세팅한 이후 화염 멸균을 통해 inoculation을 하고는 어두컴컴했던 실험실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Inoculation을 하는 것은 이제 기억에서 희미해졌음에도, 이쯤이야 숨쉬는 것 처럼 쉽다는 그 어르신의 표정, 그리고 시크하게 설명하고 다시 실험실 반대편으로 사라지던 그 분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일대는 Cargill사 소유의 넓은 옥수수밭, 그리고 심리적으로 5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지나가던 화물열차의 길이도 인상깊었지만,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주름만큼 깊게 내 뇌 속에 패여 자꾸 상기하게 만들었다. 마치 동네 주민이라고 해도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어떻게 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실험실의 바이오리액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남기게 했다. (물론 며칠 뒤 석 대에서 오염이 있어, 실험 세트에 지장이 있었다는 점은, 그냥 이 글에서는 눈을 감아도 좋겠다.)
필자는 단백질 바이오의약품의 세포주와 배양공정 개발하는 업무를 수년 하고, 몇 년이 지나, 2021년 인하공업전문대학의 화공환경과 (현재는 화학생명공학과)에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하길래 덩달아 진학했던 대학원에서는, '실험실 한량'으로 오랜기간 지내며 연구에는 소질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운이 좋게, 회사에 채용되었고, 연구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에 수행하고 결과를 내는 것은 잘하든 못하든 어떻게든 하게 되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Red Queen’s Hypothesis가 적용되는 한 복판이 회사였기에,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오랜 기간 대학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한 번은 품어 볼 법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아련한 소망은 간직하고 있었다. 소질 없는 연구보다는, 산업계에서 배우고 익혔던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내심 바랐다. 때마침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시설의 계속적으로 증설되며, 인력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자를 학교에서 찾고 있어, 운이 좋게도 부임하게 되었다.
학교 부임 이후의 가장 큰 고민은, 바이오의약품 제조공정을 수행할 생산인력이 되기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효과적일까였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 대학의 본질은 '학문의 전당', '상아탑'의 역할로, 학문과 진리탐구가 주 목적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곤 취업을 위한 통로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듯 하다. 필자가 소속된 '전문대'라는 곳은,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설립시기부터 취업을 위한 통로 그 자체의 역할을 오랜 기간 수행해왔다. 즉 내 본연의 업무는 산업계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며, 마스터플랜 설계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현실과 이상은 늘 간극이 존재하고, 범인의 실제 삶은 영화 속 주인공 처럼 완벽하지 않다. 부임 후 학교의 히스토리를 살피니, 한 해 수십 명 (최근 3년의 취업 현황을 보니, 200명 가까운 인원이 인근지역의 바이오의약품 생산회사로 배출되었다.)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인력을 배출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내에는 직업교육의 이상과는 차이가 있음을 파악했다. 기저에는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겠지만, 가장 눈앞의 문제는 ‘비용’이었다. 생물공학적 이론 교육은 실무에 맞춰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시설과 유사한 환경에서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기술적 발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제조 설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었지만, 현재의 국내 대학 재정 구조로는 이를 확보하는 것에 어려움이 커보였다.
이 문제를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ROI(Return on Investment)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업은 투자 대비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자본을 투입하고, 최대한의 생산성을 창출하는 것이 산업의 목표다. 하지만 대학, 특히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은 ROI의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산업은 ROI를 단기적인 수익성 관점에서 평가하지만, 대학은 ‘지속 가능한 인력 양성’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3년단위로 움직이는 전국의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사업만으로는 장기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더구나, 바이오의약품 산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의 특성을 지닌다. 실무를 강조하는 이론 교육에 더해,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설비와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실습 환경이 필수로 진행되어야 마땅하지만, 학교가 자체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다.예를 들어, 랩스케일의 바이오리액터 서너 대, FPLC 두어 대를 갖춘다고 해도, 실제 대규모 스테인리스 설비들, 복잡한 밸브 시스템과 엔지니어링 요소가 결합된 생산시설에서의 경험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스케일업(scale-up)과 실제 산업 환경을 반영한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양성된 인력이 바로 현장에 투입했을 때, 당장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부임 첫 해에 고민을 거듭하다, 벤치마킹이랍시고 해외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업무의 구직자들은 어떻게 교육되는지를 살핀 적이 있다. Biogen, Lily, Fujifilm Diosynth Biotech, KBI pharma 등 생산시설이 일부 있는 미국 North Carolina의 Research Triangle Park(RTP)를 타겟으로 하여, 인터넷의 세상에서 이것저것 클릭해본 적이 있다. 특히 한국의 직업교육 기관과 유사한 운영 형태의 커뮤니티 컬리지들을 중심으로 확인했을 때, RTP 인근의 Wake Tech.이나 Durham Tech. 등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인근 기업들과 교육 커리큘럼을 공유하며 함께 교육을 설계하고 공동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타 지역으로 확장해서 살펴보니,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의 커뮤니티컬리지들은 NBC2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마찬가지로 교육 커리큘럼을 공동 편찬하며, 인력양성 교육을 진행하는 등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모델들은 단순한 대학별 교육이 아니라, 산업과 직접 연결된 교육을 제공하며, 기업과 교육기관이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우리에게도, 재정지원 예산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한계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학교 측면에서 바라보는 예산이 아닌, 정부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쟁과 상생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 분배에 초점을 맞춘 예산이 아니라, 소수의 특정 거점에 (특정 대학도 아니고, 서로 협업이 가능한 기관 또는 별도설립 법인) 집중적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생산직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의 협업 모델을 구축하는 틀과 시설을 만드는 방향 설계가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니, 이미 투입된 시설의 활용 효율화를 모색하며, 투자 비용을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생산인력 교육을 위한 시설적 지원에 대해, 분배적 차원 보다 공동의 차원으로 양성할 것을 고려해봄이 어떨까.
인력양성을 하는 기관 또한 계속 모집하여 늘릴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양성 교육기관들의 교육 자원(예: 교수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커리큘럼도 마찬가지다. Modality 별로 표준화된 생산공정 플랫폼이 있는 것들은, 교육의 플랫폼 또한 공유하는 모델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생과 경쟁은 그 경계를 짓는 것 자체가 난제이나, 더 큰 시선으로 보자면, 일단 공생의 틀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경쟁하는 것이, 전략산업이라는 바이오의약품산업의 성장을 가속화시키며, 효율적인 투자 운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효율적 투자 시설과 교육 공동 플랫폼의 운영은, 실효성 있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인력 양성이 될 수 있고, 이는 나아가 10여년 전 본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의 교육도 고려해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생산시설의 단순 업무직 교육 및 지원을 통해, 단순 반복 작업을 요구하는 직군에서는, 청년층의 감소를 보완할 대안으로 노령층을 교육하는 모델도 고려할 수 있다.
바이오협회에서 발간한 “2023년 기준 국내 바이오산업 인력수료 및 공급 실태조사보고서”에서,‘바이오의약’ 업종에서의 부족 인력 직종 순위 1위는, 생산-시설 직종이었다. 2029년까지 매년 가장 많은 인력이 부족한 직종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 시점 국내 바이오의약품의 BIG2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인원 구성을 보더라도, 공정직 또는 생산직으로 분류하는 인원이 각각 2500여명, 1300여명이고 (‘24.9 공시, ‘24.6 공시자료 참조) 이는 각 기업의 해당 시점전체 인원의 약 50%를 차지하는 비중임에도 인원이 부족한 직종이라는 것이다.
산업계로부터 도망쳐온 나는 이제, 산업의 직접적 발전에 기여보다는, 부족한 생산직종의 인원을 양성하여 도움이 되는 교육자이고싶다. 과연 그들에게 나는 부임 후 4년간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포장될 것이 아닌, 정말 산업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 교육을 제공했을까. 지금에의 최선이 아닌, 실제 산업 발전의 가속화에, 시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교육의 방안들을, 계속해서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