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유학, 그리고 그 너머: 나의 BT 여정
Date 2025-03-31 18:41:3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72
육상도
박사후연구원
Department of Chemical Engineering,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sangdo.yook@austin.utexas.edu

시작하는 글

 

   글을 시작함에 앞서 이렇게 기고의 기회를 주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고자경 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한 마음이다. 박사 학위 이후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뒤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과거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이 BT의 길을 준비하는 혹은 걷고 있는 후배 과학자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나 동기부여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연구의 시작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되었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럽게 미생물을 활용한 수처리 (Water treatment)에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이때 미생물이 음식 발효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작은 (微) 생물이 아닌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아름다운 (美)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생물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 POSTECH 박 종문 교수님 연구실에서 석사 학위를 시작하였다. 당시 포항산업과학연구원 (RIST)과 협업으로 박테리아 군집체인 2차 슬러지를 활용하여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는 연구를 하였는데 바이오 디젤 생산량을 늘리려면 결과적으로 박테리아의 살을 찌워야 했다. 공정상으로 여러 modification을 적용해보며 결과적으로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바이오 디젤의 증가를 도출할 수는 있었으나 야생형 박테리아의 군집체로 증가시킬 수 있는 지질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생물의 대사 경로를 직접 조작할 수 있다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의 선배들과 교수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유학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유학 준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유학 준비는 순탄치 못했다. 남들은 1년 내에 지원하고 합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의 이 선미 박사님 (현 고려대) 연구실에서 근무하며 효모, 그 중에서도 비전통효모 (non-conventional yeast)인 Yarrowia lipolytica의 유전자 엔지니어링을 연구하였다. 비 전통 효모가 비 전통인데는 이유가 있었다.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여 원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엔지니어링하려면 상동 재조합 (Homologous recombination) 방식으로 DNA의 이중가닥절단 (Double-strain break)을 복구해야하는데, Y. lipolytica는 외부 유전자의 유무와 관계없이 잘린 끝부분을 그대로 연결하는 비상동말단연결 (Non-homologous end joining)을 주로 활용하여 손상 DNA를 복구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연구 경험이 계기가 되어 비전통 미생물의 엔지니어링을 주제로 훗날 박사 연구를 하게 되었으니 사람 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렇게 주중에 연구에 몰두하고, 주말에는 강남 학원가에서 TOFLE이며 GRE를 준비하며 유학을 위한 시간을 쏟아부었다. 유학 지원에 번번히 낙방을 하니 내가 더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연구 실적과 영어였는데 'the higher and the more, the better'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ʻ유학이 뭐길래...’ 이 기간동안 내 스스로에게 수없이 자문하며 포기할까 했지만 세 가지 덕분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사람이다. KIST에서 연구하며 평생에 감사할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KIST에서 연구를 지속하며 유학을 준비할 수 있게 지지해준 많은 감사한 분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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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 AIM lab.

 

   둘째는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상태라면 지속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연구를 지속하며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성장하는 기쁨이 쌓여갔다. 내가 성장하고 있기에, 어제와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같더라도 내일의 상황은 분명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지도 교수님의 한마디였다. UIUC의 진용수 교수님께서 한국에서 세미나를 오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ʻ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가짜들은 전부 떨어져 나갑니다. 종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진짜입니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유학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그저 대학원 생활의 연장이었지만, 끝까지 버티어 이 사실을 몸소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본격적인 BT 여정

 

   일리노이 대학 (UIUC)의 Department of Food Science & Human Nutrition의 진 용수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하며 초기 1년간은 Clostridium이라는 박테리아를 엔지니어링하는 연구를 진행하다가 2년차부터 본격적으로 미에너지부(DOE)의 Center for Advanced Bioenergy and Bioproducts Innovation(CABBI)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CABBI는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 및 바이오 제품 개발을 목표로하는 연구 프로젝트로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활발히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감사하게도 CABBI에 속하면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연구 분야를 탐색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바이오 매스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개선하는 연구부터 수확된 바이오매스의 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다양한 미생물의 엔지니어링, 합성된 바이오 제품의 정제 (purification), 그리고 각 분야의 연구를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수행하기 위한 high-throughput 연구 기법과 각종 computational 모델링 (In-silico modeling) 적용까지, 전체적인 숲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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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CABBI 프로젝트에 속한 각 분야의 연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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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UIUC 진 용수 교수님 연구실 – 주 회식 장소였던 Basil Thai 앞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른 팀에서 생산한 바이오매스 가수분해물(hydrolysates)을 엔지니어링된 미생물을 통해 다양한 바이오화학물(Bio-chemicals)로 전환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특히 앞서 언급한 Y. lipolytica 균주의 대사 엔지니어링을 통해 xylose 대사 효율을 높이는 upstream pathway 엔지니어링과, 지질, 변형 지방산, 폴리케타이드 등 acetyl-CoA 유래 고부가가치 물질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downstream pathway 엔지니어링에 집중했다. 연구를 하며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박사 초기에 느꼈던 막막함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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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UT-Austin Alper lab 동료들과 Texas bbq

 

   현재는 텍사스 대학 (UT-Austin)의 Dr. Hal Alper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박사 과정에서 쌓은 미생물의 대사 공학과 합성 생물학 지식을 다양한 문제 해결에 적용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미 방위성과 나사와의 협업을 통해 우주 공간에 생물 공정을 (space bioprocessing)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이지만 그만큼 연구가 흥미롭고 연구를 수행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크다. 앞으로는 BT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마무리하며

 

   연구 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도전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 또한 많았다. 연구자로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모든 과정이 결국은 개인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발전하는 방향이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곳에서 생활하며 무엇보다 좋은 점은 로드 트립을 하며 다양한 자연 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실에서의 실험과 논문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차를 타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바람을 맞는 것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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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좌) Niagara Falls, (우) White Sands National Park

 

   마지막으로 나를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UIUC 진 용수 교수님, 고려대 이 선미 교수님, KIST 엄영순 박사님, POSTECH 박종문 교수님, 서울시립대 김주식 교수님, UT-Austin의 Hal Alper 교수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분들의 지도와 격려가 없었다면 이 길을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