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에서 문득 떠오른 무위이치(無爲而治)
Date 2017-04-01 19:18:1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55
도준상
교수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시스템생명공학부
jsdoh@postech.ac.kr

작년 10월 시칠리아섬에서 개최된 학회를 참석한 후 귀국하는 길에 로마에서 오전시간이 남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 시국(도시이자 나라라서 市國이라고함)을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방문 전날 찾아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바티칸시국은 면적이 0.44 km2이며, 성벽으로 둘러 쌓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고 하였다.완벽한 원이라고 가정하면 둘레가 2.35 km, 이른 아침에 도착하여, 대략 걸어서 30분~1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거리라고 막연하게 계산하고,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터덜터덜 성벽 옆 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영어를 할 줄 아냐?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해주는 관광 상품이 있는데, 줄을 길게 서지 않고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다가왔다. 길이 생각보다 단조롭고 재미가 없어서 ‘괜히 시작했나’고 조금씩 후회를 할 무렵이며, 세계 4개 박물관 중 하나인 바티칸박물관은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아서, 반갑게“좋다!”며 그를 따라 갔는데, 그가 불쑥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시칠리아섬 학회에서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로부터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하도 듣고왔고, 일반적으로 관광지에서 동양인을 보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냐고 먼저물어보곤 했던 경험으로 볼 때 참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한국 사람 맞다. 어떻게 알았냐?”고 반문하니 “일반적으로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영어를 잘 못 한다며 도망간다. 동양인 줄 한국 사람이 제일 영어를 잘 하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아하, 동양 3국 중 우리가 가장 영어를 잘 하는구나!! 주황색 우산을 깃발 대신 든, 유머 감각과 함께 꼬장꼬장함이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가이드로 바티칸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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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 가이드 투어는 나처럼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진 사람에게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선 기나긴 줄을 옆으로 지나 바로 입장할 수 있어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며칠 동안 찬찬히 돌아보아도 모자랄 만큼 방대하게 넓은 박물관을 가장 유명한 작품만 뽑아서 3시간만에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 전시품은 역대 교황들이 모아놓은 소장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대 로마시대 작품부터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 작품까지,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기독교 성경까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방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교황이 고대 로마 건축물로부터 건축자재를 뽑아 다른 건물을 지은 측면에서 로마시대 유적을 많이 훼손하였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고대 유적들을 잘 모아두어 나름 유적을 보존하는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수 많은 인물상이 있는 한 전시관의 한 석상 앞에서 가이드 할아버지가 가볍게 “이 사람은 티베리우스라는 로마황제인데, 카프리 섬에 틀어박혀서 시민들과 소통 없이 통치를 한 참 안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며 지나갔다. 예전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로마 황제라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티베리우스는 카이사르의 암살과 함께 혼란에 빠진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은 로마제국 2대 황제이다. 그는 50대 중반에 황제가 될 때까지 내전 이후 어수선한 로마의 곳곳을 다니며 활약하였고 게르만전선에서도 탁월한 지휘력을 보였으며, 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아우구스투스와는 혈연 관계가 전혀 없었지만 양자로서 제위를 물려받았다.

티베리우스는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검투사 시합을 개최하거나 공공건물을 짓는 등 인기를 올릴만한 사업을 제정 낭비라는 이유로 금기시하였으며, 결정적으로 말년에 카프리섬에 은둔하여 서면으로 제국을 통치하여 로마시민들로 하여금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함으로써, 숨을 거두었을 때 “티베리우스를 테베레 강에 던지자”!고 사람들이 외칠 정도로 인기가 없는 황제였다. 또한, 당시 식자층이 모여있는 원로원을 무력화시켰으므로 당대의 역사가들 또한 ‘최악의 황제’로 그를 평가하였고, 그의 치세에서 예수의 처형이 이루어졌으므로 향후 서양문명의 근간이 된기독교에서 또한 그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이 혼군/폭군으로 평가돼 온 티베리우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후대에 현장에서 발견된 비석의 금석문이나 포고령 등의 사료를 통해서라고 한다.

현재 그는 근검절약으로 내전 이후의 어려운 로마 제국의 제정을 안정시켰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제도를 정비하여 넓은 제국의 원활한 통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행정가였는가는 그가 카프리섬에 은둔하고 있을 때 로마 인근에서 일어난 피데네 검투장에서 사고가 나서 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때 서면 보고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역시 서면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의전도 최소화하였고,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도 관대한 등 황제로서의 권한보다는 책임에 충실했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 섬에 은둔한 이유가 여러 가지 악재로 인간사 및 권력에 염증을 느껴서라고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미 드넓은 제국의 현황에 대한 파악을 마치고, 은둔하여서도 무난하게 통치를 할만한 정보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여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를 ‘수수한 노력은 남의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그는 전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제국의 체제를 견고하게 다지는 일에만 전념해 제정 로마를 반석에 올렸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새로운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내가 티베리우스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가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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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무위(無爲)의 정치’를 행한 정치가가 한나라 2대 승상인 조참이다. 한나라 1대 승상인 소하는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하고도 재기할 수 있도록 후방을 안정화하고 병참 및 보급을 완벽하게 수행한 행정의 달인이다. 소하는 한나라 초기 제국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여 중국 역대급 명승상으로 꼽히곤 한다. 소하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된 조참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소하가 만든 제도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라고 하고, 자신은 굳이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술독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조참이 죽은 후 백성들은 “소하가 제정한 법, 한 글자도 밝고 옳지 않은 것이 없었네. 조참이 그 뒤를 이어 그 법을 지켜가며 잃지 않았네. 맑고 공정하게 정사를 돌보니 온 백성들 한결같이 편안하네” 라고 노래하며 그의 공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와 같은 조참의 정치를 ‘무위이치(無爲而治)’를 행했다, 즉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다스렸다, 라고 평가한다.
동서양의 역사를 보면서 어느 정도 대칭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그리스-로마시대와 춘추전국-진/한시대이다. 그리스시대와 춘추전국 시대에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제시되었다면, 그러한 다양성이 제정 로마시대나 한나라를 거치며 거대한 제국을 다스릴 수 있는 제도와 사상으로 통합되고 고도화되어, 향후 서양에서 근대 시민 정치 사상이 발달하기 전까지의 정치체계 및 사상을 형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 시대를 연 ‘창업’의 인물들은 많은 경우 주목을 받지만, 그러한 시대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능력은 있으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한 사람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신이 굳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묵묵히 수행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일간의 바티칸 여행 도중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 ‘무위이치(無爲而治)’라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