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Date 2017-04-01 19:24:3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001
전태준
교수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tjjeon@inha.ac.kr

MBTI 검사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는 Katharine C. Briggs와 그의 딸 Isabel B. Myers가 카를 융1)의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 이론을 근거로 개발하여 쉽고 유용하게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성격유형 선호지표이다. 심리학자 융이 주장하는 심리유형론은 인간 행동이 그 다양성으로 인해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아주 질서정연하고 일관된 경향이 있다는 데서 출발하여, 성격유형지표를 제시하고, 이를 검사하는 방법이 중 하나가 MBTI 성격유형검사이다. 또한 이 검사는 한국 기업 입사시빠지지 않는 성격 유형 검사이기도 하다.

 

42%의 대기업 간부의 성격 유형은 ISTJ


한국심리검사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2) 내향적,감각적, 사고적, 판단적을 나타내는 “ISTJ”형은 세계인구의 6%정도를 차지하여 다른 성격 유형에 비해 두드러지는 성격유형이 아니나, 유독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약 21% 정도를 차지하는 성격유형이라고 한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한국 대기업의 임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국인이 차지하는 ISTJ형 비율의 무려 2배에 달하는 42% 이상이 “ISTJ”의 성격 유형 결과가 나왔다. 이 놀라운 숫자는 대한민국 대기업의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성격을 가져야 하는지, 아니며 이러한 성격유형을 가진 사람이 임원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한국의 기업 문화에 대한 성찰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림자 측면을 가진다


또 다시 융의 심리학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 또는 “그림자 측면”이 있다고 한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전체, 즉 사람이 의식하지 않는 모든 것이기에, 한 쪽 면은 거부하거나, 성격의 바람직한 면만 안 채 있으려는 경향이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름 사회적으로 잘 훈련된 사람에게는 MBTI 검사에서 그 그림자를 보여주지 않는 기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융은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지며, 개인의 의식 생활에서 구현이 적을수록, 그것은 검어지고 어두워진다”라고 말을 한다. 따라서, 42%나 차지하는 “ISTJ” 성격유형을 가진 우리나라의 대기업 임원들은 회사에서 은퇴 후 다시 MBTI 검사를 하게 되면, 다른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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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014년 YABEC 심포지엄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필자


“울보”, “짬보”, “치마폭”


수도 없이 많은 단어를 나열할 수 있지만, 울보, 짬보, 치마폭은 어릴 때 주위 어른들이 필자를 일컫는 단어들이다.
필자는 어릴 때 학예회, 참관수업 등을 위해 무대에만 나가면 벙어리가 되거나 울기 일수였고, 늘 엄마 치마폭 뒤에 숨어 있었으며, 장기자랑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기 싫은 것은 물론, 수학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는 상당하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얌전한 여자 아이들이 즐겨 입었던 반바지에 스타킹을 입고 싶어서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던 기억이있다. 직업상 대학교 교단에서의 강의는 물론이고, 대중강연, 행사 사회, 그리고 가끔 TV 출연 및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그 때 마다 들리는 심장박동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필자 표정과의 괴리는 본인만 알고 있는 콤플렉스이다.
융의 이론대로라면 필자의 그림자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유학 전 잠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신입 사원인 필자가 IMF 직후 교체된 외국인 은행장 및 임원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이하 PT)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필자의 직속 임원은 급한 집안 문제, 팀장은 고객사의 프로젝트 때문에 비상 근무 상태라, 회사로서도 그렇지만, 필자에게도 상당한 도박일 수 밖에 없는 PT가 되었다. 밤새 긴장감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청심원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가슴을 결국 호텔 앞에 있는 편의점에가서, 맥주 두 캔을 마시고야, 술기운에 용기가 생겨 PT를 나름 훌륭하게 마치고, 나름 여유 있게 질의 응답까지 해결하고 나왔다. 하지만, PT 후의 허탈함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도 하고, 여전히 콤플렉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맨 정신이 아닌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서 PT를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천 개의 페르소나를 쓰다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마도 일을 놓고 쉬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일에만 집중하는 워크홀릭도 아니고, 욕심이 많은 편도 아닌데, 어쩌면 필자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이고 싶지않고, 그것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하는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일컫는 말인 “페르소나”. 융이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주장했듯이, 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 가면들을 적절히 장식해주는 장신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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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그림자와 페르소나 (그림: 윤선희 /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박사과정)


실패를 두려워하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이, 나는 왜 실패를 두려워할까? 라는 생각도 수 없이 하게 되었다. 거기엔 필자가 자라온 배경이나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고, 또한 수 많은 핑계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어두워지는 그림자에 대해 수 많은 자아 성찰을 상당 시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잠시라도 meditation(명상)을 통해 mindfulness로도 표현되는 마음을 챙겨 보려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와중 우연히 마주친 시 한편을 읽으면서, 포기는 결정이고, 내려 놓음은 성찰이 없이는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비울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시를 통해 전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내려 놓음에 대하여” – 남유정
부드러운 구름덩이들이
서로를 핥는 산기슭을 날던 조팝나무 향기가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는
봄날
사랑을 내려놓지 못해 쩔쩔매는 사이
산이 그늘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얀 꽃잎들이 산그늘을 환하게 켰습니다
하늘이 구름을 내려놓고
나무는 그 많은 꽃들을 내려놓고
물은 쉼 없이 낮은 자리로 제 몸을 내려놓고
산에서 돌아오며
내려놓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그는 슬며시 목숨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누운 곳이 얼마나 깊었던지
얼마나 무거운 삶으로 눌러놓았던지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봄날이 다 지나도록
산만한 그늘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꽃잎 한 장 내려놓는 것이
가볍지 않다는 걸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참고

 

1)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이다.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위스 바젤 대학 의학부를 나온 뒤 취리히 대학 의학부 정신과에서 교수직에 있으면서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이에 대한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또한,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 바 건강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예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한국융연구소 칼 구스타프 융 소개 내용 발췌)

 

2) MBTI 개발과 활용, 한국심리검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