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식품공학자의 오디세이
Date 2017-10-09 21:41:1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304
변 상 균
교수
인천대학교 생명공학부
sbyun@inu.ac.kr

호머의 <<오디세이>>는 온갖 에피소드들이 상상력을 돋우고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하는 명작이다. 갖은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목표인 귀향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참고 견디며 항해를 계속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주인공 오디세우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끊임없는 탐구정신의 표상인 오디세우스는 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늘 용기를 주며 “넌 해낼 수 있어!“라고 격려하는 등대 같은 존재이다.
생명공학자이면서 식품공학자로서, 교수로 임용 된지 이제 겨우 3학기 째인 풋내기가 감히 <<오디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나 자신과 내 연구 활동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금년 봄 한국생물공학회에서의 발표를 계기로 한국생물공학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전통적 학문으로서의 식품화학과 지금까지는 주로 경험적 근거에 기반해 왔던 기능성식품학에 최신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실효성있는 천연물 유래 기능성 식품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의 연구 방향과 비전을 가지게 되기까지 내 길 탐색을 위한 방황, 갈등, 인내, 행운, 그리고 은사님들의 사랑과 조언이 있었기에 융합적인 연구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나의 인생과 과학자로서 성장해오고 있는 길지 않은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식품공학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당시 이미 식품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다행히도 서울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식품만큼 다채롭고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며 사람들의 건강과 즐거움에 크게 기여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도록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대 전역 후, 학부 3학년이 되어 나는 조만간 다가올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복학 후 넘치는 에너지로 더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첫 단추가 3학년 때 갔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에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새로운 탐색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식품생명공학 전공 지식을 습득해 나감에 따라 나는 식품과 질병 관련 연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교환학생으로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원하는 수업을 수강해 보려던 참이었다. 이 때 수강하게
된 Biology of Cancer와 Personal and Community Health 수업들은 나의 질병과 질병의 예방에 대한 관심을 더욱 커지게 했고 식품공학을 기반으로 질병 관련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주 구체적인 학문적 그림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나는 생명과학적 지식이 내가 하고자하는 공부와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환 학기를 마치고 관악으로 돌아 온 나는 생명과학부 부전공을 시작하였다. 생물과 분자기전에 대한 수업들은 재미있었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능성식품 연구라는 것이 있다는것도 알게 되었다.

 

두 갈래 갈림길에 서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슬금슬금 그 다음 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교환학생 시절 만족스럽고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미국 유학을 고려하게 되었고, 운이 좋아 미국 정부에서 주는 Fulbright U.S.Scholarship에 지원하여 유학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유학을 위한 거의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내가 가려는 이 길 외에 또 다른 길이 눈앞에 제시될 때 나의 갈등과 고민은 한참이나 내 머리 속을 심하게 흔들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고 이곳저곳에 관심을 가지는 내 성향 탓에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어렵게 얻은 Fulbright U.S. Scholarship 포기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나아가 평생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진로 자체와 개인적인 당시 상황들을 종합하여, 결국 자교의 이형주 교수님께서 지도하시는 기능성식품학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포기한 길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난 후에는 열정과 몰입이라는 내 안의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재미있게 나아갔다.

 

새로운 꿈의 실현을 위해 떠나다


박사과정 동안에는 천연물 유래 항암 및 항피부노화 물질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분자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하였다. 특정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들을 우선 세포주 모델에서 효능 및 기전을 확인하고 동물에서의 효과도 검증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효능 연구와 분자기전 탐구방법을 익히고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되면서는 다시금 내가 하는 공부의 지평을 넓힐 때가 왔음을 느끼고 당시 내가 배우고 싶었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미국 Harvard Medical School/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사 후 연구과정 중에 주로 진행한 연구는 신약 개발(항암제) 및 화장품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high-throughput chemical screening 장비를 갖추고 있는 기관이었기에 대단위 high-throughput screening에 기반 한 신약 개발 및 기능성 화장품 소재 발굴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러한 새로운 원천 연구 기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에 설레는 마음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시세이도와 공동연구 하는 기관이었기에 내 연구를 통해 실제적으로 기능성 화장품 소재를 개발하는 데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의 내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의 비전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Harvard Medical School/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의 박사 후 연구과정은 학문의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경험하게 했다. 식품성분의 암 예방 효능 평가를 위해서는 동물을 모델로 6개월 이상씩 실험을 수행해야 한다. 주 실험모델인 쥐의 종양크기 측정 및 식품성분 투여 등의 일을 적어도 2일에 한 번씩은 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이 다 쉬는 일요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실험을 수행해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6개월 가까이 실험이 수행되어 거의 끝나갈 무렵, 케이지 한 개에 들어있던 모든 쥐가 익사해서 전체실험이 중단되었고, 그 동안 수고했던 실험결과들은 데이터로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쥐 사육장을 관리하던 직원이 케이지 천장에 물병을 꼽아주는데, 물병이 열려서 물이 케이지로 들어가서 익사한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 역시 잊을 수 없다. 생강의 가열에 따른 성분변화를 분석해야 하는데, 생강에서 성분을 추출하고 분석하는 장비가 없어서, 보스톤에 있는 다른 실험실 중 그 연구를 실행할 수 있는 랩을 찾아 겨우겨우 실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식품공학과에서는 흔한 장비이나 의대에서는 식물이나 식품에서 성분을 추출하고, 농축하고, 분석하는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 다량의 생강이 필요해서 대형마트에서 보유하고있던 모든 생강을 다 사고도 모자라서 다른 두 개 마트의 생강까지 모두 다 구매해서 자동차에 싣고 타인의 실험실에 가서 실험을 해야 했다. 여러 어려운 순간들을 겪으면서 이루어진 일들이어서인지 실험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재미와 보람은 훨씬 더 컸다.

연구는 계속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박사 후 연구원일 당시 나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크게는 1) highthroughput chemical library screening 을 활용한 분자표적 기반 항암 소재 발굴 및 피부노화개선 소재 발굴,2) 그에 대한 효능 평가, 3) 작용 기전 규명으로 나누어 설명 할 수 있다. 정상세포에는 영향이 적으면서 특정 암세포만을 표적하여 사멸시키는 신규 물질들을 발굴하고 그의 작용기전 연구를 통한 신규 항암 표적을 발굴하는
연구 및 60,000 여개의 천연 추출물 library를 활용한 미백 소재 발굴 등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박사과정과 박사 후 연구원 과정 동안 터득했던 1) 화합물이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표적단백질의 규명,2) 세포 및 동물 모델에서 분자표적의 작용기작 규명, 그리고 3) 화합물이 분자지표에 미치는 영향 및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을 규명하는 연구 경험들을 총집결하여 나는 본래 나 자신이 학생 시절부터 품어 왔던 비전, 연구 목표와 다시 마주했다. 그 결과 현재 나는 지금까지 다양하게 축적해온 생명공학적, 식품공학적 지식들을 깔때기처럼 모아 융합된 형태의 선진 식품생명공학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체계적이고 보다 정밀한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한 식품소재 개발로 실제에 적용 가능한 기능성 소재 및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을 목표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우선 후보 물질 선정을 위해 개발한 특화된 세포주를 이용한 chemical screening을 통해 조직 재생 또는 면역 조절 물질들을 발굴하고 있다. 특히 식품/천연물에 함유된 기능성 생리활성 물질들이 필연적으로 거치는 가공 과정에서의 함량 변화 및 화학구조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연구함으로써 가공 이후의 기능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가공조건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연구재단의 신진연구과제를 수행 중이며, 이들 연구를 통해 Hippo/YAP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식품 유래 물질을 발굴하고, 특히 간 손상에 대한 보호 효과 및 간세포 재생/증식 효능 평가, 심근경색 등의 심장 허혈-재관류 손상 후 심장 근세포 재생 및 심장기능 회복 효능 평가 등을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선별된 기능성 물질의 함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공법 (가열, 건조 등의 가공 조건)을 연구하여 기존에 없던 고부가가치 기능성식품 소재 분야를 개척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가공조건별 함량 및 효능 분석을 통해 기능성을 높이는 식품소재별 맞춤형 가공법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한국식품연구원과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인삼의 품종 및 가공조건에 따른 기능성 물질의 함량 변화 분석과 그에 따른 에너지 대사 및 대사질환 개선 효능 등을 평가하고 있다.


감사의 마음 늘 가득하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민으로 갈팡질팡하기도 했지만, 사실 학위 후에도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신약개발에 관련된 연구가 주된 주제이다 보니 다국적 제약 회사 (Big Pharma)에서 일하는 것과 교수로서 학계에서 연구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지금의 선택을 한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이유는 내가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강의하고 상담도 하면서 나 자신이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교원으로서 실험실을 새로 구축하면서 우리실험실 학생을 지도하고 학과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교수로서의 삶과 연구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된다. 학자로서의 여정을 막 시작한 나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율리시즈(Ulysses)” (*주: 율리시즈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가 이야기 하듯 “세월과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약해지지만, 강력한 의지로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며, 결코 굴복하지 않는 (”Made weak by time and fate, but strong in will /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삶을 지향하고 싶다고 감히 말해본다. 부족한 나의 인생 이야기와 연구에 대한 소개를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