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생명공학자가 생각하는 융합적 연구와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하는 자세
Date 2017-10-09 22:13:0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027
이 택
교수
광운대학교 화학공학과
tlee@kw.ac.kr

나는 학교 도서관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주 빌리러 가는 편이다. 어느 더운 여름 도서관을 거닐다가, 여러 분야의 책을 쌓아두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을 보고, 문득 학부시절 대학원에 관한 고민을 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생명공학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이 책 저 책을 번갈아 가며 읽어보고 찾아보고 하던 그 시절의 모습과 겹쳐졌던 것 같다.
평소 생명공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혼자서 의학 서적도 빌려서 읽어보고, 농업 및 식품공학 책도 빌려서 읽어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학부 3학년 때 학교에서 바이오 융합기술이라는 연계전공이 신설되어, 알게 된 바이오 칩, 바이오 센서라는 연구 분야는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생명공학이라는 연구 분야도 생물학(Biology)과 공학(Engineering)의 융합 학문이었고, 적용되는 범위도 농업, 축산, 식품, 화학공학, 의학, 약학에 이르기 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최근에는 생명공학의 영역이 더욱 더 넓어지고 있어서 전자공학 및 정보통신기술(ICT)과도 합쳐져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단계다. 그중에서도 바이오칩 및 바이오 센서는 매우 다양한 공학적 분야의 요소 기술들이 함축된 융합 학문이다.
생체 분자의 기작에 대해서 연구하며 이를 유전공학적인 기법으로 제어하고 제작해 소자화해서, 분자 간 신호를 측정하고 현상을 분석하는 바이오칩은 생명공학부터, 화학, 물리학, 기계공학 및 전자공학을 아우르는 융합학문이기에 그 응용 범위도 의학, 식품, 약학, 환경 등과 같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학문이다. 바이오칩이라는 것은 다양한 분야 기술의 조합으로 시너지를 만들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고유의 식문화인 비빔밥과 같은 것으로, 비빔밥 재료의 하나하나로 존재하고 있을 때의 맛이 아닌, 식재료들을 버무리고 비벼서 합치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것과 같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식의 접근 방법이 나는 좋았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바이오칩을 연구하시는 지도 교수님 대학원 연구실에 입실하여 학부 연구생을 하면서, 나는 밤낮으로 실험을 하고, 여러 분야의
논문만 읽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것은, 대학원에서 처음에 했던 바이오칩 연구는 생체 분자를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재조합 하고, 이를 화학적으로 고정화시켜, 전자공학적인 방법으로 신호를 읽어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를 만드는 굉장히 융합적인 연구였다. 실리콘기반의 무기 재료의 융합으로 나타나던 전기적인 성질 혹은 유기 분자가 갖고 있던 전자를 저장하는 전기화학적 성질을 모사하여, 생체 분자도 유전공학적인 기법으로 재조합 되어, 전자를 저장하는 장치로 쓰이는 연구는 정말로 즐거웠다. 물론 관련 논문이 매우 적어서, 참고할 만한 논문이 별로 없어서 실험의 최적 조건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생체 분자의 조합에 따라서 나오는 새로운 생체물질의 전기화학적인 특성들은 요소기술의 합이 단순한 합이 아닌 시너지 효과라는 것의 반증이었고, 새로운 전자 소자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나는 더욱더 생명공학의 융합적 연구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박사 연구는 생체분자로 이루어진 점차 단순한 장치에서부터 좀 더 복잡한 기능을 하는 다기능성 전자 소자 장치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운 좋게도 무사히 박사를 마친 나는 미국 켄터키 주립 대학교 약학대학 석좌교수님으로 계시던 Peixuan Guo 교수님 연구실로 박사후 연구원(Post-Doctor)을 가게 되었다. Guo 교수님은 평생을 RNA 하나만 연구하시던 분으로 완벽한 과학자셨다. 철저한 이론에 입각하여 연구를 진행하셨고, 예상하지 못 한 결과가 나오면 해석이 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시는 엄격한 분이셨다. 지금까지 학문의 깊이 없이 기술간 융합만 시도하고, 얄팍하게 여러 분야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던 나에게, 학문적 깊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분이었다. 켄터키로 자리를 옮긴 후 몇 개월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의사소통의 문제, 약학 및 분자생물학 전공 지식 부족의 문제, 공학자와 과학자의 차이에서 나오는 접근방식의 차이와 오해 등으로 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종전까지의 내 연구 실험 진행 방식은 선 수행 후 검증 및 해석 체제였지만, 새로 온 곳은 이전 단계에서 완벽하게 연구 이론 및 실험 결과에 대해서 검증을 하지 못 하면, 절대로 그 다음이 허락되지 않는 실험실이었다. 특히, RNA의 구조적, 화학적 특성만을 평생 연구한 지도 교수님에게 RNA와 나노입자를 혼성화해서 제작한 바이오 전자 소자라는 것을 토의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벅찼다. 몇 개월간의 실패 끝에, 결국 Guo 교수님은 RNA 관련 실험 및 연구를 완벽히 터득하고, RNA와 나노입자를 컨쥬게이션 하고 선택적으로 결합 및 제어해서 나노 블록을 제작하는 연구를 먼저 완성시킨 후에, 이것이 잘 되면 이것을 전자 소자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자고 제안하셨다. 식상한 전개가 되지만, 굉장히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연구실의 박사과정들과 박사후 연구원들이었다. 다른 연구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했던 Guo교수님 연구실은 한 사람의 연구 과제가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4~5명의 박사후 연구원 및 박사과정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함께 참여했던 연구자들의 인종도 다양했고, 전공도 물리학에서부터 화학, 약학과 같이 다양한 전공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연구의 아이디어와 사물을 보는 관점도 융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융합 연구를 몸으로 배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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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Peixuan Guo 교수님 연구실 구성원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연구토론이란 주로 지도 교수님과 학생 당사자 간의 디스커션 만으로 진행했던 반면에, Guo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참여 구성원들 모두가 내 연구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과 코멘트를 주고, 보완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니, RNA만 연구하는 연구실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의 의견 교환이 있었기에, RNA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융합 연구를 했던 것 같았다. 결국 연구는 잘 진행이 되었고, 합성된 RNA-나노입자는 다른 전기적 성질이 매우 우수한 입자를 합성해서 전자 소자를 무사히 제작하게 되었다. 이 때 배웠던 분자생물학 및 약학의 연구 및 실험 방법들은 지금의 나에게는 굉장히 값지고 소중한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만들었다.
박사후 연수를 마친 후, 귀국 후 서강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지내면서도 융합 연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암세포나 줄기세포를 전자 소자적인 유닛 개념으로 해석해서 분화기반 치료법으로 응용하는 연구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웨어러블 바이오 센서 및 휴대용 바이러스 검출 센서도 전부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의 융합 연구이다. 또한, 이러한 생명공학 융합 연구들은 현재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한 세계적인 석학 클라우스 슈밥 (Klaus Schwab)은 2016년을 제 4차 산업 혁명의 해라고 이야기하고,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4차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을 발표했다. 작년에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엄청난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일반 대중들에게 실감시킨 사례였다. 슈밥은 컴퓨터, 스마트폰을 넘어 모든 사물에 IoT 기술이 접목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생명공학 기술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퀀텀 컴퓨팅, 빅 데이터, 3D 프린팅 기술과 효과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매우 빠른 속도로 생명공학 기술들도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순히 3D 프린터로 장기를 대체하거나, 체내에 이식할 수 있는 바이오 칩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뇌를 정확하게 모사할 수 있는 인공 생체 뇌소자를 AI가 직접 만든다던가, 원래 생명공학자들이 하던 실험 설계 및 문제의 인식 개선점을 AI가 직접 판단해서 진행을 하는 정도의 파급적인 연구들이 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같이 경험이 매우 부족한 신입의 융합적 생명공학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 혁명 책을 보면, 혁명의 속도, 범위와 깊이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대비를 하라고 적혀있다. 따라서, 그의 제안을 생명공학분야에 적용해보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가 1~3차 산업혁명과 달리 선형적이 아닌 지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빠르게 각기 전공에 맞는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4차 산업 혁명은 디지털 혁명 기반의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을 융합해, 사회, 경제,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것이기에, 거시적인 안목에서 생명공학 연구분야에 대해서 요소에 집중하기 보단 통합적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해가는 생명공학 시장의 수요를 재빠르게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전달해 생명공학 혁명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시하면서 준비를 해야 4차 산업혁명에 성공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융합형 생명공학자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생명공학을 연구하시는 선배 교수님들 및 박사님들과 주위의 지인들과 긴밀하게 연계하고 교류하며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면, 나같은 신입의 생명공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폭풍 안에서도 성공적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1.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 혁명’, 클라우스 슈밥, 새로운 현재, p.13-28.
2. ‘4차 산업혁명의 충격: 과학기술 혁명이 몰고올 기회와 위협’,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흐름출판, p.3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