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와 분신술
Date 2017-10-09 22:48:14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303
이 선 구
교수
부산대학교 화공생명·환경공학부
sungulee@pusan.ac.kr

최근에 아이와 같이 마블시리즈 영화들을 보았는데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등의 영웅 캐릭터에 이어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주인공을 새로운 영웅으로 내세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아주 유능한 외과 의사가 교통사고에 의해 손을 사용 못하게 되고, 이의 치료를 위해 마법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항상 대부분의 영웅물이 그렇듯이) 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간 주인공도 초능력자가 되어 지구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스토리입니다. 좀 특이한 점은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악한 지구인 또는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이 아니라 아예 다른 우주에서 온다는 설정이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초능력 또는 마법을 사용해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를 넘나들면서 많은 활약 끝에 지구를 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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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로 다른 우주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닥터스트레인지


흥미가 생겨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니 이렇게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 다른 우주들이 수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우주론을 “다중우주론” 또는 “평행우주론” 이라고 하는데(엄밀히는 이 두 이론이 좀 다르다고 하는데 설명을 읽어보아도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알게 모르게 이러한 우주론과 관계있는 공상과학 만화 또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졌다고 하네요.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에서도 다중우주를 이용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인 오공이 초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시간이 매우 늦게 흐르는 다른 우주에 가서 수련을 하는 장면들이 이러한 예라고 합니다(물론 작가가 다중우주론을 배경으로 이러한 설정을 했는지 그냥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러한 다중우주에 관한 것은 이론적으로만 제시되어 있고 실험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유력한 우주론 중의 하나이며, 이에 관한 책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와 다른 수많은 우주가 있다고 하니 믿기 힘들지만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없으니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중우주의 이론적인 배경 중 하나는 ‘양자이론’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매우 작은 미시적 물질의 세계에서는 입자(또는 알갱이)들이 우리의 직관과는 매우 다르게 거동을 하는데 대표적인 특징이 “알갱이 하나가 동시에 모든 곳에서 존재할 수 있고 모든 경로를 동시에 거쳐 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면 이해하기 힘든 자연 현상을 아주 훌륭하게 설명할 수가 있다고 하네요. 이와 관련 된 예로써 항상 언급되는 현상은 빛 알갱이, 즉 광자의 거동에 관한 것입니다. 빛 알갱이 하나를 목표지점을 향해 발사하면 우리의 직관은 야구공을 던졌을 때와 같이 하나의 경로를 따라서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의 실험 결과는 빛 알갱이는 하나의 경로가 아니라 지나갈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동시에 지나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고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예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원자 안 전자의 거동인데 전자 알갱이 하나가 원자 안에서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모든 실험 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알갱이의 ‘동시 존재’ 또는 ‘다중 경로’적 성질은 아주 작은 알갱이의 세계에서는 이미 검증되었다고 하니(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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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하나의 길이 아니라 다양한 길을 동시에 지나가고 있는 빛


다중우주론은 양자이론을 적용하여 우주도 아주 작은 알갱이로부터 출발하였다면 동시에 다양한 경로로 진화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다양한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렇다면(다중우주론도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증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물질의 ‘동시 존재적’ 또는 ‘다중 경로적’ 성질을 생물에 적용하여 생명 현상을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생명현상의 신비 중 하나인 생명의 다양성을 양자이론에 입각하여 생각해 보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리고 생명의 끝도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생명이라는 물질도 동시에 수많은 경로를 통해 그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지구상에 동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체(개, 개미, 개구리, 개나리 등등)들이 그 수많은 경로 하나하나에 해당 된다고 생각하면 생명의 다양성이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아주 큰 생물체가 아주 작은 물질인 DNA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재의 과학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이라는 물질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동시에 거쳐 가는 물질의 양자적 본성에 부합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의 객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성질의 결과이므로 서로 완전히 다른 객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모두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 유난히 교감을 잘하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있는데(물론 이것도 만화나 영화의 주제로 많이 사용되어왔고),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들이 실제로는 모두 얽혀져 있는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는 같은 객체라면 이런 능력들이(적어도 서로 다른 우주를 넘나드는 능력보다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도 아닐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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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지구상에 다양한 생물체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


‘분신술’은 홍길동전, 서유기를 비롯한 수많은 소설,만화,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초능력입니다. ‘나’라는 객체가 시공간적으로 동시에 존재하여 서로 다른 경로로 행동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분신술인데, 시각 및 촉각 등 인간이 지닌 감각을 이용해서는 도저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죠. 이렇게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또는 관찰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물질의 ‘동시존재성’에 의하면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특히 ‘의식’이라는 것을 물리적 실재로 인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내가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할 때 나의 몸이라는 물리적 객체는 KTX를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의식을 이용하면 ‘나’는 비행기를 타고, 차를 몰고, 걸어서 그리고 서로 다른 길을 이용해 동시에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의식을(관찰은 안되지만) 몸, 팔, 다리와 같은 나의 물리적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난 분신술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현재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의식을 이용한 분신술을 이용하면 거실에서 TV를 보며 차를 한잔 마시고 있을 수도, 수풀 우거진 산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을 수도, 극장에 가서 아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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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분신술을 펼치고 있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