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연구생활 in 스위스
Date 2024-09-22 16:28:05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89
양병선
박사후연구원
University of Basel Department of Biosystems Science and Engineering, ETH Zurich
byeongseon.yang@unibas.ch

들어가며

 

   길고도 길었던 6여년간의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새 출발을 하는 시점에서 우연하게도 BT 스토리 원고 요청을 받게 되었다. 어떠한 글을 써야 할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스위스에서 박사과정 혹은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 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소개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스위스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구생활 및 경험한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 보려 한다.

 

해외 박사후 연구원, 한 번 해보지 뭐!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연구자가 되길 꿈꿨던 나였기에, 과학자로 서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첫 출발인 대학원에 자연스럽게 진학하게 되었고, POSTECH 차형준 교수님 지도하에 석박사 통합과정을 시작하였다. 수중에서 강한 접착능력을 보이는 홍합 유래 접착 단백질을 모사하여 조직공학 및 의료분야에 적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홍합 접착 단백질이 어떻게 수중에서 강 한 접착 능력을 갖는지 메커니즘을 밝히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1) 수중 접착의 핵 심 아미노산 도입을 통한 재조합 단백질 공학을 바탕으로 2) pH-responsive protein metal ion 결합이 강한 접착 및 응집력에 기여하고 3) salt bridge와 cation-pi interaction 기반의 상분리가 내수성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내면서 무사히 석박사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단거리 달리기와 같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나 혼자만 열심히 공 부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나 혼자서는 통제할 수 없 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연구 계획부터 논문 투고 마무리로 이어지는 마라톤 같은 대학원 생활이 나에게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independent scientist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련 의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향후 진로를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 히 과학적 지식을 탐구해 나가는 연구가 재 미있었고, 내가 연구자의 길을 계속 걸어 나 갈 자질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결국 해외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University of Basel과 ETH Zurich에 공동 소속되어있는 Michael Nash 교수님 연구실에서 오퍼를 받아 스위 스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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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스위스 바젤을 가로지르는 라인강. 

 

스위스 바젤, 거기 어디야?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에게 바젤은 생소한 도시였다. 오퍼를 받기 전 온사이트 인터뷰 를 위해 스위스 바젤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스위스 첫 인상은 물가가 정말 비싸다는 점이었다. 인터뷰 전 여정 의 피로를 최소화하자는 생각으로 바젤 공항에서 시내 숙소까지 10분 거리의 택시를 탄 나에게 청구된 금액은 50 프랑 (그때 당시6만원) 이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었는지 호텔 리셉션에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또한 스위스는 치안이 좋 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날 새벽에 공항으로 가는 길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느 낌을 주었다. 인구는 20만, 권역까지 포함하면 60만 정도로,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니었지만 알차고 정갈하다고 느꼈고, 알프스산이 보이지는 않지만 중심으로 라인강이 흐르는 모습이 예쁜 도시였다. 독일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젤은 사실 유럽의 제약 중심지이다. 국제적인 제약회사 Novartis와 Roche의 본사가 위치해 있고, 많은 바이오/제약분 야의 협력기업과 스타트업 기업이 모여 있는 곳이다. 때문에 외국인 비율이 35% 이상으로 굉장히 높고, 영어가 공용어 수준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국제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고방식이 많이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덕분에 바젤에 정착해 나가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 같다.

 

연구만큼 너의 삶도 중요해! 

 

   스위스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연구소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해 나갔다. 스위스의 연구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말 달랐다. 먼저 연구시설이 굉장히 잘 되어있다. 건물 전체가 중앙 냉난방으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실험실 내부는 연구 목적에 맞게 built-in으로 효과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연구실의 물품 주문 밑 관리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및 폐기물 처리 등도 과차원에서 지원하고 모든 시스템이 온라인 자동화 되어있고, 중요한 연구 장비들 또한 과 차원에서 관리되고 공유되며, 연구를 지원하는 테크니션 및 IT 지원팀이 따 로 있어, 학생들과 연구원들은 최적의 환경에서 불필요한 업무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두 번째로,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의 생활권을 보장해 주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급여가 주어지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연구실에서의 일은 최대한의 효율로 최소시간 머무는 것을 권장한다. 언제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25일의 휴가가 주어지며, 정신건 강도 중요하다는 이유로 1년에 한번은 2주이상의 휴가를 연속으로 붙여서 사용하기를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스위스 연구환경 덕분에 지난 6년 동안 좋은 연구를 즐겁게 할 수 있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위스에서의 삶도 많이 즐길 수 있었다. 여름이면 알프스로 하이킹하러 가고, 겨울에는 스노보드 타러 가고, 또 친구들과 자전거나 클라이 밍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스위스의 자연을 누려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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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스위스에서 즐기는 하이킹과 스노보드.

 

 

또 다른 마무리, 또 다른 시작 

 

   내가 박사후 연구원으로 머물렀던 Michael Nash 교수의 연구실은 AFM 기반 Single-molecule force spectroscopy를 이 용하여 비평형 상태에서의 단백질 물성을 연구하는 biophysics 분야가 중심이었다. 단백질결합체의 물성을 단분자 수준 으로 관측할 수 있는 실험적인 테크닉과, 평형 및 비평형 상태에서의 물성 분석 및 비교, 단백질 열역학적 특성 이론 모 델에의 적용 등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 fluorination을 통한 평형과 비평형 상태에서의 단백질 물 성 변화 방향성의 불일치, 2) fertilization에 관여하는  단백질결합체의 catch-bond 특성, 3) 외부 기계적 자극에 활성화되는 GPCR의 물성 공학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최근에는 바이오 제약분야로 프로젝트를 확장하여, 4) 면역체크 포인트 단백질의 비평형 물성 비등방성에 대한 연구와 5) 심층 돌연변이 탐색 (DMS)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NGS)을 통한 면역체크포인트 단백질의 항원결정인자 분석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좋은 기회를 얻어 박사후 연 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스위스 바젤에 새로 세워진 Botnar Institute of Immune Engineering 연구소에서 새 출발을 하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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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좌) University of Basel, Department of Chemistry 건물과 (우) ETH Zurich, Department of Biosystems Science and Engineering 건물.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쓰면서, 내가 해외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연구자의 길을 걸을 자질이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의 답을 얻으려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6년이 지나 박 사후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자질이 있든 없든, 내가 연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한,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가는 한, 어떻게 는 과학 발전에 이바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BT NEWS 독자 여러분의 여정 을 응원한다. 끝으로 BT 스토리에 원고 투고의 기회를 주신 한국화학연구원 김효정 박사님, POSTECH 차형준 지도교 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