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D. 지식을 탐하고 지혜를 갈구하는 자
Date 2018-04-16 20:07:35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19
권길광
Post Doc.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합성연구센터
kkkwon@kribb.re.kr

맨 처음 젊은 BT인의 원고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 박사학위증에 채 잉크도 마르지 않은 나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이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쓸지 몇 날을 고민했지만, 학술 논문이 아닌 다른 지식을 전달하거나 사상을 풀이하기에는 내 소양이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았다. 따라서 이 글은 계몽이나 지식의 전달을 그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 글은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정리하는 자전적인 에세이가 될 것이며, 그 반추 과정 중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일찍이 공자께서 사람의 나이에 따른 보편적인 인간의 상태를 정의해 놓으신 잣대를 대입해 보면, 나는 현재 입지(立志)를 지나 불혹(不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불혹이 되지 않아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만, 특히 생물 분야의 새로운 지식이나 접근방법에는 그 매혹적인 유혹에 여지없이 흔들리곤 한다. 그리고 이런 유혹에 대한 순응은 종종 내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나의 석사시절을 매혹시킨 것은 미생물연료전지(Microbial Fuel Cell)였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연료전지는 음극과 양극이 전기적으로 통하지 않는 막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에서 저항이 있는 전선 등으로 연결되어, 전압차에 의해 전류가 흐르는 장치이다. 이때 연료전지의 전압차이를 미생물을 이용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미생물연료전지이다. 음극의 표면에 Shewalella sp.나 Geobacter sp.같이 대사과정 중 최종 전자수용체(electron acceptor)로 금속을 사용할 수 있는 미생물을 부착시키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생산되는 전자가 세포막 외부로 노출된 전자전달계를 통해 전극으로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양극으로 이동,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 아름다운 미생물에 의한 전기의 흐름은 나의 석사과정시간의 흐름과 함께 했다. 또한 알면 알수록 더욱 놀라워지는 미생물에 대한 지식의 갈망은 내 삶의 방향을 돌려 학문으로 향하는 다른 이정표로 안내하였다.
`박사과정 때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회로(Genetic Circuit), 효소공학(Enzyme Engineering)에 매료되었다. 합성생물학이란 단어는 아직도 조
금씩 다르게 해석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자연계에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물파트(Bio-part)를 이용하여 우리가 출력(output)을 예측 및 최적화할 수 있는 유전자회로 및 미생물을 구축, 원하는 분야에 적용하는 학문이다. 특히 나는 전사조절인자(Transcriptional Regulator)를 이용한 특정 물질 입력(input)에 따른 출력을 세포내부의 형광으로 치환하여 단일세포단위로 관찰 및 선별하는 유전자회로를 구축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전자회로를 세포 내부의 효소 활성 측정에 적용하여 효소 활성의 정성 및 정량화를 시도하였으며, 이를 이용한 새로운 효소 활성 개발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정교한 생체 회로의 흐름 역시 나의 박사생활을 매혹시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박사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지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이름 앞에는 정식으로 Ph.D.가 붙게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지게 된 수식어인지라 나에겐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Doctor of Philosophy, 라틴어의 어원으로는 지식을 사랑하고 법칙을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명칭은 나에게 박사라는 수식어가 내 삶의 목표가 아닌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이정표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이 향기로운 명칭이 남은 내 생애를 매혹시켜, 평생 지식의 배움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지식의 추구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셨던 공자께서는 학여불급(學如不及)이라는 말로 배움의 끝이 없음을 나타내셨다. 나는 지금까지 지식의 배움을 끝없이 탐하는 자였으며, 불혹이 지나서도 새로운 지식의 배움에 있어서는 항상 매혹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스갯소리로, 학부생은 자신이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하고, 석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에 좌절하고, 박사는 자신이 모르는 걸 남들도 모른다는 것에 좋아한다고 한다. 이는 배움의 끝이 없음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또한 지식의 끝에서 지혜를 갈구하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찍이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실학파 학자인 연암 박지원 선생이 주장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모르니, 지금껏 사랑해 온 지식을 바탕으로 새 것을 창조하는 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다.

나의 스승께서는 과학자(Scientist)는 예술가(Artist)처럼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칭하시며, 그 새로운 과학적 주장은 항상 뒷받침 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reference)의 끝(edge)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를 위해선 창조를 뒷받침하기 충분한 과학적 지식, 한발자국 내딛을 방향을 찾는 지혜, 그리고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폭 넓게 다양한 이론을 검토하고, 충분한 실험적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정하면, 담대하게 그 방향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이 Ph.D.라는 수식어를 이름 앞에 둔 자가 평생을 다짐하고 정진해야 할 화두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백이면 백 다 사는 길이 다르듯, 그 학문적 흥미나 길도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정답도 오답도 없는 단지 길고도 짧은 여정일 것이다. 그 길 중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여정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걸음걸이에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Ph.D., 지식, 지혜, 용기 등은 평생을 탐하고 갈구해야 하는 화두이기에 글이 개똥철학들로 중구난방이고 갈피를 잡지 못한 듯하다. 다만 이 글이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걷는 사람도 있구나, 혹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알려줄 수 있으면 족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