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진행 중
Date 2018-04-16 20:15:1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37
정근재
Post Doc.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jgj814@gmail.com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생물공학회 소식지의 젊은 BT 人란에 기고 할 수 있게 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갓 박사과정을 졸업하게 되었고, 연구 성과도 미흡하여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하지만 박사 학위 논문의 감사의 글을 썼던 심정으로 저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제가 그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적 장래 희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적었던 “과학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은 고등학교 때 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 생각했던 “과학자” 범주에 “공학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 꿈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래 희망이 바뀌지 않은 이유는 어릴 적 경험과 부모님의 교육 방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주말마다 동네의 작은 공립도서관에 가곤 했는데, 그 때면 항상 과학 서적이 있는 섹션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읽었던 “우주는 왜”, “동물은 왜” 등등의 책들에서 과학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제가 충분히 생각을 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다른 것을 강요하지 않고 제가 결정한 일들에 대해 많이 믿어주셨습니다. 그런 덕분에 막연하지만 스스로 무언가탐구하고 공부해서 알아내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때 은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전국 과학 축전에서 부스도 맡아보고 이런저런 실험도 경험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한 과학 원리를 이용한 실험들이었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연을 해 보면서 더 흥미를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오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던 시기기도 했고 국내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아주 큰 사건이 있었던 시기기도 해서 관련 뉴스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원리와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관련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대학교 진학을 위해 학과 선택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학 계열의 생명과학과 공학계열의 생명공학을 비교해 보면서, 과학 잡지의 내용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결과가 나왔지만 그 당시의 제 생각으로는 순수 과학의 연구도 흥미롭지만 어떤 과학적 원리를 응용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공학 연구가 더 적성에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 진학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새벽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하는 일상을 매일 반복하였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때는 공부해야 하는 범위가 정해져 있었고 미흡한 부분을 하나하나 게임에서의 공략을 해 가는 기분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표한 성적을 얻기 위해서 투자했던 것이 헛되지 않도록 시험에 대해 정신 수련도 많이 했던 시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어 원하는 학교의 학부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대학에 와서의 생활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공부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모든 것들이 서툴렀습니다. 그렇지만 동아리 생활도 하고 주변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생활에 어려운 점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생활에 좀 익숙해지면서 대학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알게 된 생명공학의 분야도 매우 넓고 다양해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했지만 어떤 직종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할지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까지의 경험으로 제 성격과 적성에 대해 판단해 보았을 때 실험하는 것도 좋아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학교에서 연구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칠 수 있는 교수직을 목표로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진로 문제로 학부 지도교수님께 상담을 하러 갔을 때 교수님께서 교수직을 목표로 하지 말고 연구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라고, 교수라는 직업은 연구하는 과정에서 따라올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연구하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든 계속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듣고 진로에 대한 것은 좀 더 폭넓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여러 분야의 연구를 검토해 보다가 조직공학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해외 유학은 준비하지 않고 국내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 대학원의 김병수 교수님 연구팀인 줄기세포 및 조직공학 연구실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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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기획부터 실무까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김병수 교수님 연구실 홈커밍데이 사진

 

실질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대학원 진학 후부터였습니다. 선배님들의 연구 보조와 개인 연구 공부를 하며 초반의 대학원 생활은 계속 순탄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연구실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고 관여한 주제들의 실험 결과가 괜찮게 나와서 여러 논문에 참여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 실험 주제 십여 개가 연달아 3년간 실패를 하면서 좌절과 절망감이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에 들어온 사람들과 비교를 하며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자책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결과가 따르지 않아서 한동안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우울감에 사로잡혔고 연구실에 출근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실험을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런 일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연구실 선후배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조급함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지나고 보면 스스로를 챙길 수 있게 변화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눈앞에 있는 일들이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그런 사실 때문에 힘들고 괴롭긴 하겠지만 또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조금 바꾸니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동물 실험과 그 분석에 대한 기술들은 이미 습득한 상태였고, 연구실 어느 곳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 손안에 꿸 수 있는 보석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아직 꿰지 못했다고 해서 낙담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새로 시작한 마우스 하지허혈 모델에서의 혈관 재생 실험의 결과가 좋게 나왔고, 우여 곡절을 거쳐 대학원 석박통합과정 6년차가 되어서야 작년에 첫 주저자 논문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다른 연구 주제가 잘 되어서 어렵사리 올해 2월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였습니다. 논문 성과도 부족하고 경력도 일천하지만 다행히 올해부터 포스닥으로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의 김동익 교수님 연구팀에 합류하게 되어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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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며 돌아보니 저는 아직도 어릴 적 꿈을 좇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부, 대학원 10년 생활을 마치고 이제 30대가 되어 새로운 곳에서 더 큰 책임감과 함께 하고 싶던 연구를 하게 되어서 설레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끈기와 꾸준함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힘인 것 같습니다. 원체 요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하고 노력한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면서 인내심이 단련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힘들었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느리게라도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자 합니다.
끝으로 긴 자기소개서 같은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독자 분들의 하시는 연구가 모두 흥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