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생명공학자의 융합연구 도전기
Date 2020-08-03 16:36:11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85
신승호
교수
경상대학교 식품영양학과
shshin@gnu.ac.kr

“We are what we eat.” 이 문구는 19세기 독일 철학자 Ludwig Feuerbach가 “Der Mensch ist, was er iβt (직역: Man is what he eats)”라고 언급한 것에서 유래했다. 정치, 사회, 과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문구는 재해석되어 왔는데, 식품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식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관적이고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 이 문장이 아닐까 한다. 특히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좋은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하다.
식품영양학과에 이제 갓 조교수로 임용된 나에게 그동안 해왔던 연구 활동과 그 과정에서 얻은 짧은 식견을 소개할 기회를 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 나는 식품 유래 천연물의 질병 예방 효능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하여 대상자의 유전적 특징에 따른 맞춤형 식품 및 영양 성분 섭취 모델을 확립해 질병 예방과 억제에 기여하고자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기능성식품학의 방법론을 토대로 최신 컴퓨터생물학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그분들께 올리는 감사의 중간보고서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식품생명공학 입문
고등학생 시절 나는 화학, 생물, 인체 및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세심한 가르침 덕에 다행히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전공 탐색을 하고 2학년이 될 때 전공을 선택하는 광역화 제도 아래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 입학 당시에는 식품생명공학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식품공학과 교수님들의 팀티칭 교과목이었던 식품생명공학개론 수업을 재미있게 수강하면서 ‘이게 내가 원하는 전공이다.’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전공 진입 이후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려 노력했다. 구체적으로는 식품생명공학 전공 수업, 경영학과 부전공, ROTC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뼛속까지 이과생인 나에게 문과 계열인 경영학 전공 수업은 어려웠지만 신선했고, 돌이켜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ROTC 장교 출신인 아버지의 독려로 학군단에 입단하여 3, 4학년 때에는 학군단 후보생 생활을 했고 방학 때마다 입영 훈련을 받았다. 4학년 때 식품 내의 유효 성분들을 이용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목표를 두는 기능성식품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롤모델들의 혹독한 훈련
ROTC 후보생 가운데 당시 매년 50명을 선발하는 해병대 장교에 지원 합격하여 해병 장교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전역 3일 뒤 관악으로 돌아와 시작한 기능성식품학 연구실에서의 대학원 석사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지도교수님인 이형주 교수님과 연구실 구성원들의 배려로 하나씩 적응해나갔다. 석사학위 주제는 프로폴리스 성분 중 하나인 카페인산 페네틸에스테르의 항비만 효과 규명이었다. 지방전구세포를 지방세포로 분화시키는 세포주 실험, 유효물질의 효과를 분자생물학적으로 규명하는 실험기법들을 익히며 연구의 기본인 가설 설정과 검증의 과정을 체득했다. 직접 실험 및 연구를 시작한 뒤에 접하는 교과서와 논문들은 그 의미가 새로웠다. 하나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년간의 연구와 실패, 시행착오를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문헌 속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당시 연구자로서 갓 걸음마를 뗀 나에게 선배 연구자분들은 좋은 롤모델이었고, 그분들은 그야말로 지독하게 업무에 매진했다. 나는 좋은 분들로부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분들의 업무수행 방식, 삶의 태도를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회사, 군대, 연구 등 분야를 막론한 공통점은 ‘혹독한 훈련’이었다. 기억에 남은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한 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임원까지 두루 거치신 분과의 문답이다. 장기간의 재직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여쭈어보았을 때 “평사원 시절 회사 프린터가 고장 나서 전체회의 때 아무도 자료를 나눠줄 수 없었는데, 우리 팀이 프린터를 고쳐서 유일하게 자료를 배부할 수 있었다.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라는 답을 들었다. 두 번째는 해병대 복무 시절 대대장님의 “프로라면 절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문구이다. 남들보다 조금 잘했다고 그 수준에서 끝낼 것이 아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해병 정신으로 끊임없이 발전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세 번째는 선배 연구자분들의 학문에 대한 자세이다. 실험 조건을 확립하기 위해서 변인을 하나씩 바꿔가며 하루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지내고,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에도 수준 높은 논의와 토론에 몰입했다. ‘조직이 개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지독한 훈련이다.’라는 「이기는 습관」 속 문구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본받을만한 점이 있는 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고 나도 이를 따르려 노력했다.

 

융합 학문에의 도전
석사학위를 마친 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나는 암과 같은 질병의 다양한 유전학적 특성에 맞추어 질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식품 성분들을 알아내는 것에 목표를 두었는데, University of Minnesota의 다양한 학과 교수진과 Mayo Clinic이 포함된 융합학과인 Bioinformatics and Computational Biology Program 박사과정은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식품생명공학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학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컴퓨터 전공 분야의 이해를 높이고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재미있게 시작했다.
박사과정 수업은 내게 부족한 컴퓨터 분야 및 생물정보학 분야에 집중했고 그와 동시에 컴퓨터생물학 연구실과 Mayo Clinic의 공동연구에 참여하여, yeast genome level에서의 genetic interaction (두 유전자를 함께 제거하였을 때 하나의 유전자를 제거한 효과에 비해 시너지가 나는 경우) 정보를 암환자의 synthetic lethality (동시에 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면 세포 사멸을 일으키지만, 어느 한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세포사멸이 일어나지 않고 살아남는 경우)에 적용하는 컴퓨터 기법을 익혔다. 이후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구조가 비슷한 식품 유래 활성물질들의 분자타겟을 컴퓨터로 예측하고, 그 효능을 세포 및 분자생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대장암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때에도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물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나는 박사학위 진학 당시 식품과 컴퓨터 두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었지만, 연구하면서 알게 된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님들 대부분은 한 분야가 확실하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들이었다. 학위를 마친 후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나 역시 식품생명공학에 뿌리를 두고 컴퓨터생물학을 약간 할 줄 아는 연구자라고 자평하게 되었다. 

 

실패의 실패는 성공
모든 연구자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연구의 가설 설정 및 검증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님의 지도 철학은 학생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연구계획을 수립, 실행하게 하고 일정 기간 후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함께 가설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역량 부족 및 실험 미숙 등으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수행했던 연구주제를 중단해야 했고, 이 과정이 세 번 반복되는 동안 자신감은 떨어져 갔다. 다행히도 네 번째 시도한 연구주제는 좋은 결과를 얻어 논문으로 이어졌고 나는 이를 통해 실패하더라도 그 개척의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시도했고, 실패에도 담담해졌다. 어려운 과정 끝에 좋은 결과를 얻으면 ‘실패를 하도 하다 보니 실패하는 데에 실패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Be A Professional - 과제 수주 및 관리
박사 후 연구원은 오메가-3 지방산을 최초로 명명한 호멜 연구소(The Hormel Institute)에서 수행하면서 독립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했다. 1) 식품 함유 생리활성물질들의 대장암 억제 효능 규명, 2) 천연물 유도체 중 대장암 억제 효능을 가지는 유효 물질 발굴, 3) Synthetic lethality 기반 항암 소재 발굴에 노력했고, 연구 결과물들은 미네소타 대장암 연구재단으로부터의 과제 수주로 이어졌다. 기존 수상자들은 보통 6~7년 차의 박사 후 연구원들이었는데, 겁먹지 않고 1년 차 때부터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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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호멜 연구소 세포분자생물학 연구실 구성원

 

박사 후 연구원의 신분으로 연 5억이 넘는 미 정부 과제를 연구책임자로서 수행하는 귀중한 경험도 했다. 나는 지도교수 1명이 박사 후 연구원 26명을 이끄는 대형 연구실의 일원이었는데, 지도교수님이 모국의 의대 학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감사하게도 나에게 미 국립보건원의 R01 연구과제 2건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급)을 이전해주셨다. 교수급이 아닌 박사 후 연구원에게 인계하는 것이 워낙 이례적인 일이고 과제 금액이 컸지만, 대학교 연구부총장님 및 연구소장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국립보건원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연구실 내에서 분자생물학, 구조생물학, 수의학, 약학, 의약화학, 병리학, 컴퓨터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박사 후 연구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려 노력해온 덕을 보는 순간이었다. 주간에 행정과 연구를 병행하고 야간에 밀린 실험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연구 시스템을 익히고 거시적인 시각을 갖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경상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개척인 대열에 합류하며
석사, 박사,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치며 얻은 1) 식품 유래 생리활성물질의 항비만 및 항암 효과 규명, 2) 생리활성 물질들의 표적 단백질 규명, 3) 컴퓨터를 이용한 천연물의 구조 유사성 분석 및 천연물-단백질 상호작용 시뮬레이션 기술들을 집약시켜 식품영양학의 측면에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식품 내 단일 활성성분의 농도는 그 효과를 발휘하기에 낮을지 몰라도, 구조가 비슷한 여러 종류의 활성성분들이 누적적으로 동일한 단백질 표적을 억제함으로써 인체에 유익한 효능을 가질 수 있다는 모델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각종 질환별 주요 표적 단백질 활성 억제에 최적화된 식단의 구성 및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현재는 경남 테크노파크의 산학협력과제를 수행 중이며, 이를 통해 채소 추출물 및 채소 함유 천연물의 항염증 및 항비만 효능 평가, 염증 및 비만에 중요한 신호전달체계를 억제하는 메커니즘 규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국내 인구분포변화를 고려하여 노인성 질병 (피부노화, 퇴행성질환, 만성염증 등)의  완화에 도움을 주는 식품 유래 활성물질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연구의 세계에 몸담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큰 세상에 나가서 넓게 볼수록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명석한 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고 이내 마음은 겸허해진다. 식품 분야에서 “We are what we eat”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가능할지 탐구해온 길지 않은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주변의 좋은 분들에게서 도움받은 덕분이다.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 언제든 따뜻한 조언을 해주시는 지도교수님, 함께 고민하고 도와준 연구실 선후배분들,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잊지 않아야 할 덕목들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기회를 주신 한국생물공학회에 감사하며, 이 글을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도 미력하나마 간접 경험이 되었기를 소망하며 감사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