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과 인생
Date 2021-04-23 15:44:34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692
오은중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Food Science, Purdue University
ejoh@purdue.edu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 안에서도 일리노이와 콜로라도를 거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디애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지난 길들을 돌이켜 본다. 비록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나그네이지만 지나온 길의 모든 일과 단계에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 전공을 선택할 때 식품공학을 선택했던 일, 학부 졸업 실험을 하면서 생물공학을 접했던 일, 대학원에서 지도 교수님들을 포함한 훌륭한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중에서도 미생물을 연구한 결과가 우리 실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던 학부 졸업 실험은 나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강렬한 미생물과의 만남이었다. 그 때부터 시작된 미생물과 나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니 참으로 길고 단단한 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미생물과 우리의 삶이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은 더욱 나를 매료시킨다.

 실험실 적응 진화 (Adaptive Laboratory evolution)는 미생물이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특성을 이용해 미생물을 우리가 원하는 혹은 특정 형질(phenotype)을 갖추도록 진화시키는 연구 방법이다. 최근에는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 및 오믹스(omics) 분석을 통하여 대사체, 전사체 및 유전체까지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진화된 미생물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로 인한 표현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명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실험실 적응 진화는 선택압 (selection pressure)과 배양 방법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1]. 연구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생물은 거친 환경 속으로 내몰리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변화 (mutation)를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형질의 변화를 가져와 살아 남게 된다. 박사 과정 연구 주제였던 목질계 바이오 매스 유래의 혼합당을 효율적으로 발효하는 균주의 개량도 그러했다 [2]. 혼합당 대사에 관여하는 외래 대사 경로를 효모에 도입한 후, 그 재조합 효모는 자일로스, 셀로바이오스와 같은, 그동안 먹어 오지도 않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탄소원만이 존재하는 배지에서 연속적으로 배양되었다. 거친 황무지에서 재조합 효모는 그대로 도태되기 보다는 한 걸음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렇게 하나씩 생긴 생장 속도가 빠른 돌연변이들은 더 이상 황무지의 이방인이 아니라 황무지에서 개체 수를 늘려가며 당당하게 살아남은 주인공이 되었다. 재조합 효모가 연속 배양을 거치며 탄소원인 셀로바이오스를 빠르게 대사하고 기대하지 않던 성장 변화를 보여주었을 때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실험의 결과가 예상보다 좋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실험에 사용된 재조합 효모에 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유학을 와서 한번 도전 해보겠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 작은 플라스크 안에서 변화와 도전을 선택하고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재조합 효모에게 동지애와 때로는 경이로움마저 느끼기도 했다. 그 덕분에 밤 늦은 시간 실험실에서 효모와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이 그다지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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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퍼듀대학 식품과학과 건물

 

 

 지난 십 수 년간 미생물 대사 공학은 단순히 몇몇 목적 유전자를 과발현하거나 파쇄하는 것을 넘어서 넓은 범위의 대사 경로 및 기능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들을 분석하고 조작함으로써 훨씬 더 복잡한 설계가 가능한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Design-Build-Test-Learn (DBTL) cycle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먼저 대사 경로를 최적화 하거나 유전체를 편집하기 위한 대량 설계를 하고 이를 균주에 도입함으로써 라이브러리를 구축한다. 구축된 라이브러리는 연구자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실험을 거치고 다양한 분석 기법을 통하여 데이터가 산출된다. 마지막으로 얻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함과 동시에 그 결과는 새로운 대량 설계의 시발점이 된다. 이렇게 대량 지속 가능한 순환은 새로운 결과 위에 또 다른 결과를 낳고 연구자가 복잡한 네트워크를 해석하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미생물을 연구하는 이 접근법은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도전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운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을 것이고 나의 삶은 왜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일까, 실패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계획에 따라 도전해 보았고 설령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할지라도 그 도전을 통해 무언가 배웠다는 점이다. 그것이 우리의 굳은 살이 되고 단단한 근육이 되어서 다음 도전에는 1%의 용기를 더 내게 하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아직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갈 길이 멀지만 한 순간, 한 순간 DBTL cycle 안에서 어떤 경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의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박사 과정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실험할 때는 내가 실험하고 있는 이 효모가 바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라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중병이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사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지 않겠냐고. 정말 그랬다. 발효기로 실험할 때면 노란 빛을 내며 자라고 있는 효모에게 의사가 환자에게 수액 주사 놓듯 관을 통하여 당도 주입하고 pH도 조절하면서 애정을 듬뿍 쏟았던 기억이 난다. 혹시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는 마음에 수시로 발효기를 돌아보고 상태가 괜찮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항상 결과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효모는 내가 마음을 주고 관심을 가져준 만큼 나에게 보답해 주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등 많은 관계들을 맺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생물은 서로에게 조금 더 진심을 다 해보라고, 그러면 언젠가 서로에게 그 마음이 전달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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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효모 균주

 

 

 미완성의 우리 생을 살아 숨쉬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그 곁에 우리와 함께 하는 미생물은 때로는 좋은 친구이자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는지. 오늘도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느라 어두운 밤을 밝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삶과 미생물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아 있다. 나도 그 일부분이 되어 함께 정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참고문헌

 

1. Portnoy, V.A. et al. (2011) Adaptive laboratory evolution-harnessing the power of biology for metabolic engineering. Curr. Opin. Biotechnol. 22, 590–594

2. Kim, S.R. et al. (2012) Simultaneous co-fermentation of mixed sugars: A promising strategy for producing cellulosic ethanol. Trends Biotechnol. 30, 274–282

3. Liu, R. et al. (2015) Genome scale engineering techniques for metabolic engineering. Metab. Eng. 32, 14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