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미생물공학자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
Date 2021-10-03 19:18:1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570
이평강
박사후 연구원
하버드 의과 대학교 미생물학과 및 보스턴 칠드런스 병원 비뇨기과
Pyung-Gang.Lee@childrens. harvard.edu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생물공학회 소식지의 젊은 BT인란에 기고의 기회를 주신 관계자 분들 및 강릉원주대학교 연영주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과학도로서 걸었던 길을 회상하며,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을 기대하며 편안하게 적겠다.

내가 초등학생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충남 아산의 망경산 중턱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수철리 마을에서 약 2 km 샛길을 따라 올라가야만 있는 작은 기도원이 우리 집이었다. 맨 처음 이사 온 날 집 뒤편에 백여 마리의 나비 떼가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순식간에 날아오르던 기억이 난다. 주변이 온통 푸른 나무며 (나중에는 어머니가 심으신) 화초로 가득했고, 뻐꾸기와 개구리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던 곳이었다. 한가할 때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다래 잎을 끊기도 하고, 둥굴레를 캐기도 했다. 한 번은 어쩌다가 발견한 조그마한 앵초 꽃밭을 나만의 ‘비밀의 숲’이라고 이름 붙이고 가끔 가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레 자연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원래도 과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좀 더 실용적인 쪽으로 장래를 계획하길 원하셨고, 나도 과학을 통해서 인류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화학생물공학부로 대학을 진학하였고, 생명과학부를 복수전공하며 생명과학을 보다 비중 있게 배워나갔다. 학부 때 들었던 수업 중 ‘미생물학’은 나를 가장 매료시킨 분야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물이 만들어내는 무궁한 화합물과 자정능력, 그리고 BT로 응용되었을 때의 커다란 잠재력에 깊이 매료되었다. 대장균으로 대량생산한 인슐린으로 당뇨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고, 1차 세계대전 때 미생물로 아세톤을 만든 과학자가 대통령이 되는 역사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미생물공학자가 되는 것이 참 멋져 보였다. 그렇게 동 대학원의 김병기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생 인턴을 거쳐 2013년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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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울대 김병기 지도 교수님 및 연구실 동료들과의 마지막 벚꽃.

 

 

지도 교수님 연구실은 방선균, 곰팡이 등의 다양한 미생물 유래의 효소를 이용하여 또는 그 효소를 과발현한 미생물 자체를 이용하여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하는 연구를 주요하게 수행하였다. 나는 교수님과 상의하여 콩과 식물의 이차대사 산물인 ‘이소플라본’을 대사할 수 있는 장내 미생물 효소를 엔지니어링 하는 연구를 박사 졸업 주제로 정했다. 연구실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주제라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끈질긴 시도와 약간의 운(?)이 겹쳐 첫 논문을 입학한 지 3년 만에 쓸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콩에서 유래한 이소플라본을 대사하여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에쿠올 (equol)’이라는 기능성 성분을 만드는 연구였는데 재조합 대장균으로 에쿠올을 호기성 환경에서 합성한 것은 첫 발표였던 것과 대사 효소를 개량하여 합성 효율을 증가시킨 것이 신규성으로 인정받아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이후 첫 논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들이 잘 풀렸고, 에쿠올 및 에쿠올 유사체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특허로 출원 및 등록하여 한 중소기업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BT로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꿈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열매를 박사과정 5년 만에 본 것이다. 실험실 벤치 위에서의 파이페팅이 기술이전으로 열매 맺는 경험을 직접 겪은 것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고 지금도 내가 BT의 길을 걷는 것에 상당한 동기가 되고 있다.

박사 졸업 후, 2019년 6월에 보스턴의 하버드 의대에 계신 Min Dong 교수님 연구실로 Post Doc 과정을 오게 되었다. Min Dong 교수님은 우리에게 ‘보톡스 (Botox)’라고 흔히 알려진 보툴라이늄 신경독소 (Botulinum neurotoxin, BoNT)의 수용체 (receptor)를 발견하고, 다양한 타입의 BoNT를 characterization한 보톡스 대가이다. 요새는 BoNT 이외의 다양한 박테리아 톡신 및 effector에 대한 구조 분석 및 CRISPR 스크리닝을 이용한 수용체 발견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나는 자연형 BoNT를 개량하여 ‘슈퍼 보톡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Dong 교수님 랩에 조인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small molecule을 대사하는 효소에 대한 단백질 공학만을 수행하다가 미국의 새 연구실에서 동물 세포를 targeting하는 박테리아 톡신을 개량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단백질 공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동물 뉴런에서 오래 가고 효율적인 보톡스를 개발하자니 단순히 효소의 반응 활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닌 수용체 결합 도메인 (receptor binding domain, RBD)의 수용체와의 결합력, translocation 도메인의 delivery 효율, protease 도메인의 세포 내 안정성 및 유지력, 면역 활성 등 모두를 고려해야 했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자연형 보톡스가 이 중 어느 부분에서 bottle-neck이 걸리는지 파악해야 했다. 또한, practical한 톡신을 개발하자니 배양한 뉴런과 실험 쥐에서 톡신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일을 새로이 배워야만 했다. 다행히 동료 포스닥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뉴런 배양, 바이러스 실험, 톡신 주사 등의 실험을 수월히 배울 수 있었고, 운 좋게 자연형보다 3배 정도 효율이 좋은 돌연변이 보톡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효능 평가가 필요한 단계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내가 개발한 ‘슈퍼 보톡스’가 미용 및 의료시장에서 사용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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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보스턴 칠드런스 병원 (하버드 의대)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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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내가 연구하는 Enders building.

 

 

내가 미국에 온 지 9개월 정도 지났을 때 보스턴에서 코로나19가 돌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기에는 한국의 확산세가 더 컸는데 점차 미국에서의 확산세가 심화되었다. 작년에는 3월부터 6월까지 랩이 셧다운되고, 7월부터 올해 초까지는 랩 출근이 기존의 절반 정도의 시간으로 한정되었다. 바이오 실험 특성상 연구의 진행 속도가 현장 실험 시간에 상당히 의존적이기 때문에 한 동안 연구의 진척이 부진하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가족의 부고를 겪으면서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연구 이외의 나의 인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주고 함께 해준 친구들과 지인들이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고 내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임을 깨달았다. 이 자리를 빌어 힘들 때 많은 도움을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MBBL (분자생물공학 및 신소재개발 연구실) 동문 선후배님들, 현 하버드 의대 실험실 동료들, 한국 및 보스턴의 소중한 지인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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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미주 지역 MBBL 실험실 동문회.

 

 

보스턴에 온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여기 있으면서 정말 신기한 것은 학교도 많고, 굉장히 발달한 도시임에도 매우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보스턴에는 찰스강이 있는데 여름에는 요트나 카약,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붐빈다. (작년에는 팬데믹 때문에 없었다.) 찰스강을 따라 걸으며 노을이나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혹시라도 독자 중에 보스턴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찰스강을 따라 해지는 모습을 보기를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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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찰스강 부둣가에서 바라본 보스턴.

 

 

이번 코로나 사태 동안 미국의 빠르고 효과적인 백신 기술 개발을 실감하며, 한국의 BT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백신 위탁 생산을 하기에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한국 BT의 잠재력에 자부심을 느꼈다. 한국의 BT인 중 한 사람으로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하여 내가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 한국과 세계에 이바지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