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인으로 성장시켜 준 사람들
Date 2021-10-03 21:02:3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26
황성민
박사후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연구센터
sungminhwang@kist.re.kr

글에 앞서


젊은 BT 인에 원고를 기탁하기로 마음먹고 글을 쓰려니 막상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에 입각한 보고서와 논문을 쓰는 데 훈련된 내가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떤 비장의 프로토콜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적을지 고민 끝에 이 글에서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지나온 과정에서 나를 성장시킨 사람들에 관해 쓰려고 한다. 그에 앞서 아직까지 자랑할만한 이력도 내세울 만한 실적도 없지만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고자경 박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미생물, 너는 내 운명

 


나는 고등학교 생물 교과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된 생물반 활동을 통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미생물의 신비로움에 푹 빠져 내 인생 최초의 이메일 아이디를 microbsm (미생물(microbe)과 나의 이름(sm)의 합성어)로 작명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의 전공으로 미생물학과를 선택하였고 미생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였다. 특히 미생물 분류학 강의에서 극한미생물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물이 끓는 온도에서도 미생물이 생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석박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극한미생물을 연구하기 위하여 부산대학교 차재호 교수님 연구실에 석사과정으로 진학하였다. 하지만 초창기 연구는 실패와 더딤의 연속이었다. 특히 미국 옐로우스톤에서 분리된 최적 생장 온도가 섭씨 80도, 최적 pH가 2인 초고온산성 고세균인 Sulfolobus를 모델 생물로 유전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 고온 및 산성 조건에서 안정한 고체 배지를 만들어야 했다. 고체 배지를 만들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한천 (agar)의 농도를 높였지만 고온에서는 녹아버리기 일쑤였기에 다른 대안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최경화 박사님의 도움으로 gelrite라는 물질을 사용하여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기본적인 유전자 조작을 위해서 선별 인자, 셔틀 벡터, 형질 전환 최적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무수한 실패를 인내한 뒤에야 찾아온 결과물을 종합하여 초고온 산성 고세균인 Sulfolobus에 적용 가능한 유전 도구를 개발하였고 석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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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차재호 교수님 연구실 식구들.

 

 

이후 고세균에 대해 더 연구하고자 University of Florida의 Dr. Julie A. Maupin-Furlow 연구실에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였다. Maupin-Furlow 연구실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에서 분리된 호염성 고세균인 Haloferax를 모델 생물로 단백질 분해 및 대사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나는 박사과정 동안 고세균이 어떻게 비타민B1을 합성하는지 그 경로와 유전자 발현 조절 기작을 밝히고자 하였다. 세균과 무척추 진핵생물 연구를 통해 비타민B1의 합성 경로와 조절 RNA에 의한 유전자 발현조절 기작은 알려져 있었으나 고세균에서의 연구는 전무하였다. 고세균은 계통발생학적으로 세균보다 진핵생물과 유사하므로 생물의 비타민B1 생합성 경로 및 유전자 발현 조절 기작 연구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나의 연구를 통해 고세균은 세균과 진핵생물의 비타민 B1 생합성 경로가 혼합되어 있는 대사 과정을 거치며 ThiR이라는 조절 단백질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됨이 밝혀졌다. 돌이켜보면 지도 교수님 없이 이런 학문적인 성과를 이룩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학위 과정 중에 어머니와 장모님 모두 암 투병을 하셨고 아내마저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여러 우환을 겪을 때마다 지도 교수님은 따듯한 위안과 함께 가족들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학문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성숙시켜 주신 지도 교수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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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Maupin-Furlow 연구실에서의 박사 과정.

 

 

뜻밖의 인연


2017년 7월, 졸업을 앞두고 박사 과정 동안 진행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여 극한미생물 분야의 권위 있는 Gordon Research Conference - Archaea 학회에서 발표하였다. 여러 학회를 참여하였지만 그중에서도 이 학회가 나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좋은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연구 발표상을 수상했다는 점, 공식적인 학회 순서를 마치고 늦은 밤까지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고 토의를 한다는 점 그리고 그곳에서 Dr. Amy K. Schmid를 만나 장차 Schmid 연구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Wet-lab 기반의 연구만을 해온 내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에 필요한 여러 소프트웨어를 다루어야 했기에 초반 박사후 연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컴퓨터 언어에 대해 문외한인 나에게 코딩의 기본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버그를 찾고 수정해 준 Angie와 Rylee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Dry-lab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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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Schmid 연구실 식구들과 함께.

 

 

글을 마무리하며


현재 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연구센터의 이선미 박사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효모를 이용하여 유용 물질을 대량 생산해내는 과제를 수행 중에 있다. 5명의 선임/책임연구원 박사님이 이끄는 응용산업미생물 연구팀의 일원이 되어 이전까지 다루어 보지 못했던 진균을 모델로 연구 중이다. 이전의 연구 스타일과 달리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과제를 진행해야 하니 마치 갓 석사 과정에 입학해서 실험실 생활을 했던 마냥 어색하다. 하지만 낯선 이 실험실이 점점 익숙한 곳으로 변화하도록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을 돌이켜보면 늘 그래왔듯이 고마운 이들의 손길 덕분에 나는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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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선미 박사님 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