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자로서 나의 성장 이야기
Date 2022-04-09 19:18:39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899
고은경
박사후 연구원
MIT, Mechanical Engineering
eclareko@mit.edu

시작하기 전에

  글을 써 내려가기 앞서 BT 스토리란에 기고의 기회를 주신 BT News 편집위원회 관계자분들과 홍익대학교 김래현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석사를 마칠 무렵 해외 학회를 다녀온 글을 쓴지 8년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니 감회가 무척 새롭다. 본 글에서는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BT인으로서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며 성장한 과정 그리고 경험한 것들을 써 내려가려고 한다.


생명공학자로 한 발짝

  아주 어린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4학년 우주소년단에 들어간 것이 과학과 친해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멋진 단복을 입고 재미있는 실험과 활동을 하며 뿌듯하고 즐거웠던 어린시절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원들이 함께 모여 과학 경진대회도 열고, 간단한 실험과 활동을 함께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과학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더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후에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도 늘 관심이 많았다.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기초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자연스럽게 생명공학과로 진학을 꿈꿨다.

  나는 연세대학교내 언더우드국제대학(UIC)에서 생명과학공학을 전공했다. UIC는 4년간의 커리큘럼이 미국의 학부와 비슷하게 짜여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인데 중학교 2학년을 미국에서 즐겁게 보낸 후 언젠가 미국에서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이곳에서 공부한 많은 선배와 동기들이 졸업 후 유학을 가는 모습을 보며 긍정적인 ‘peer pressure’을 많이 받았고,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해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학부시절 나는 학과 공부에 있어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3학년차부터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이 많아져 연구실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연구하는게 재미있네?’ 라고 처음 느꼈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도 감히 생각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동기들이 의치전원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잠시 그쪽으로의 진로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궁극적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생명공학을 공부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석사를 하는 것이 진로에 더 좋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러 교수님들의 배려로 다양한 연구실에서 인턴생활을 했지만 어떤 연구실에서 석사과정 2년을 보낼지 선뜻 결정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중 졸업하기 직전 수강한 조승우 교수님의 세포조직공학 수업을 듣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가 의학과 공학의 중간에서 중재인같은 역할을 하며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석사 때 조승우 교수님 연구실에서 2년동안 경험을 쌓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석사를 마친 후 유학을 나가고자 하는 나의 계획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셨고 그에 맞는 프로젝트를 지정해 주셨다. 나의 주 연구는 synthetic material과 natural material에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뼈조직을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TV와 교과서에서 보던 것처럼 줄기세포가 원하는 세포로 분화하는 것을 보며 정말 신기했고 실험한 결과물이 실제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며 작은 결과를 내면서도 보람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수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2년동안 많은 논문에 참여하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도 쌓을 수 있었으며, 좋은 박사과정 프로그램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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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조승우 교수님, 공현준 교수님, Rashid Bashir 교수님, Roger Kamm 교수님 그룹에 속해 있을 당시 사진들.

 

 

미국에서 Independent Researcher로 거듭나기

  고민 끝에 나는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로 진학을 결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fellowship program에도 합격했었고, 원하던 교수님 두 분 (Rashid Bashir 교수님과 공현준 교수님) 께 co-advising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미국의 대학원은 한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대학원생들에게는 Course work의 부담이 상당해 첫해에는 두 지도교수님께서도 수업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셨다. 연구실의 구성원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큰 분위기였다. 그리고 박사 첫 해에 Qualifying Exam (박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며 많이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Qualifying exam을 통과한 후 학교에서 더이상 쫓겨나지(?) 않는 다는 것이 확실해 졌을 때 가장 행복했고 안도했었다.

  박사과정 5년 동안 미국 대학원은 학생을 “Independent researcher”로 training 시켜주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다. Thesis의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 지 스스로 구상하고, 그에 맞는 aim1, aim2, aim3를 각각 설계하는 것이 처음 박사과정의 과제였다. 이렇게 proposal을 작성하는 것은 미국에서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에 proposal을 낼 때 많이 사용하는 포맷인데 이런 형식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생소 했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려움 많았다. 이런 제안서를 쓰거나 미팅을 할 때 나의 지도 교수님들 두 분은 “왜” 라는 질문을 많이 하셨다. “왜” 라는 질문에 “왜” 라는 질문으로 꼬리를 물며 과학적으로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물론 이 모든 부분은 나중에 내가 미국에서 연구하는 생명공학자로서 한단계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국의 학교에서 대학원생으로서 느낀 새로운 점이 있다면, 연구 외적인 활동에 참여 하는 것도 독려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미국의 여러 고등 교육기관에서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의 줄임말) 분야를 어린 학생들에게 알리고 학생들이 그 분야를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outreach activity나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데 UIUC의 경우 원하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그리고 이후 미국 학계에 남고자 한다면 이런 outreach activity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하게 UIUC에 있으며 또 한가지 느낀 점은 교내에서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이 아주 활발히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UIUC에서 학위를 받고 다른 학교에서 postdoc을 하는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이야기 할 때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많이 떨어진 campus town 이어서 (마을 밖으로는 지평선 끝까지 옥수수 밭이 있다) 캠퍼스 내에 연구 시설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이공학분야의 유명한 교수님들도 많이 계셔서 캠퍼스내 공동연구가 미국의 다른 학교들보다도 훨씬 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두 지도교수님이 각각 다른 전문 지식을 가지고 계셔서 두개의 연구실에 있는 특별한 장비도 많이 사용할 수 있었고 내 연구분야에 대해서도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fellowship program과 grant에 속해 있는 많은 교수님들과 친분을 쌓게 되어 공동연구도 많이 해보고 여러 교수님들께 멘토링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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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UIUC 캠퍼스 전경 

 

BT의 메카에서 새로운 시작

박사학위를 마친 후 MIT의 Roger Kamm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BT인으로서 Boston 근처에서 일하게 된 것은 견문을 넓힐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처음 연구실에 출근하던 길에 도보로 약 10분거리에 걸쳐 Novartis, Takeda, Pfizer, Amgen, Biogen, Moderna 등의 제약회사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실리콘밸리 근처가 IT 산업의 메카라면 Cambridge와 Boston 근처는 BT의 메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느꼈다. 실제 학교의 연구실에서도 제약회사와의 공동연구가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뿐만 아니라 학교와 병원간의 공동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어 임상연구에 참여하거나 실제 환자 샘플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다. Boston과 Cambridge를 합쳐도 서울의 반도 채 되지 않지만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Brigham and Women’s Hospital, Boston Children’s Hospital, Dana Farber Cancer Institute 등 크고 유명한 병원과 연구 시설이 밀집해 있다 보니 의학과 생명공학 연구가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내가 이곳에서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Biogen이라는 회사와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요즘 BT 관련 혹은 제약 회사들은 개발 뿐 아니라 좋은 연구를 하고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위를 하며 늘 고민하던 질문인 “내 연구가 실제로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에 대답을 조금 더 명쾌하게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microfluidic chip에 신경근접합 (Neuromuscular junction) 모델을 만들어 루게릭병이나 척수성 근위축증 (Spinal Muscular Atrophy) 환자들에게 적합한 치료제를 스크리닝하는 프로젝트였다.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학계와 산업체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들이 다르다고 많이 느껴졌는데 앞으로 BT분야의 산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기관 간의 소통이 잘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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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Cambridge 에 있는 여러 BT 및 제약 관련 회사. 

 

앞으로 BT 인으로서 걸어갈 길

  한국과 미국에서 생명공학이 걸어가는 길을 보며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여 BT 산업도 많이 발전하였고, 특히 IT 산업이 발전하던 것과 비슷하게 요즘 산업체에서 leading/cutting edge 연구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진단키트, 치료제, 백신개발 관련 연구들이 크게 관심을 받고 발전하며 BT 계열 산업이 많은 관심을 받았고 훌륭한 인재들을 흡수해가려는 움직임이 커지기도 했다. 실제 미국 BT industry 에서는 좋은 인재들을 많이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나 역시도 아직 내가 다음에 갈 곳에 대해 고민중이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BT인으로서 경험한 것들이 조금 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지금 생명공학 분야에 있는 모든 젊은 BT인들이 앞으로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견문을 넓히면서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