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디저트 즐기기
Date 2022-09-24 12:01:1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29
서진호
명예교수 / 한국생물공학회 제 15대 회장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jhseo94@snu.ac.kr

COVID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던 20205월 중순,

SPC 식품생명공학 연구소 소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서 잠시 망설였다.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정년을 한 후 바이오벤쳐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다시 기업체의 연구소장으로서 full-time 으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생소한 기업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고 평소에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던 나를 되새기면서 그래 도전하자라고 굳게 마음 먹으면서 연구소장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07월부터 20227월까지 2년 동안의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소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SPC 그룹은 삼립, 파리크라상 (파리 바게트 매장 운영), 배스킨라빈스 (BR아이스크림 매장과 Dunkin 도넛 매장 운영)의 자회사를 거느린 종합식품회사이다. 핵심업종은 franchise 위주의 bakery(제빵) 사업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프랑스 등에 5천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각오로 당차게 시작한 연구소장직은 녹록하지 않았다.

 

연구소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203동의 5층에 위치하고 있어 다행히 출퇴근이나 근무환경은 겉으로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어색한 기업문화에 적응하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면 생소한 용어의 이해였다. 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R&R (Role & Responsibility),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등 그리고 용어 차이도 실감하였다. 예를 들면, “봄학기가 아니라 상반기”, “업적이 아니라 성과..

 

초기의 적응기간이 지난 후에는 연구소장직을 즐기면서 수행하였다. 연구소장은 대학교수와는 달리 3 ()를 즐길 수 있었다. 3 () 연구비 확보, 논문게재, 학생들의 취업의 세 가지에 대하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한 마음으로 연구를 수행하면 되었다.

 

기업에서의 연구는 대학의 연구와 차이가 있을까?

 

기업과 대학 모두 연구를 수행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연구 주제의 선택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내가 잘 하거나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 “The Best or The First”의 목표로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결과는 우수한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특허기술로 등록한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연구비의 확보로 이어지는 연구의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한다그러나 기업에서는 해야 하는 주제에 대하여 연구를 한다. 매출증대나 이익창출의 목표로 현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하여 연구를 한다. 다행히도 SPC에서 수행해야 하는 연구 주제는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주제와 상당히 겹쳐 있어 소장으로서의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빵은 기본적으로 발효식품이다. 사용하는 주원료는 밀가루, 소금, , 그리고 발효종 (보통은 효모만 사용하나, 효모와 유산균의 혼합미생물도 사용함)이다. 제품 품질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사용하는 원료의 표준화와 함께 생산공정의 표준화도 필요하다. 화학공정이나 의약품 생산공정에서 사용하는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s) 도 수립해야 한다. 발효식품 생산공정의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최고의 맛품질이다. 생산공정에 관여하는 다른 요소보다도 생산하고자 하는 발효식품의 맛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생산성이 높아도 맛이 없는 발효식품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맛품질의 경우, 정량화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은 표준화된 정량적인 측정방법이 없어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발효식품 생산은 많은 부분 경험 의존적이다. 경험의존적인 생산 공정을 원리 기반 생산공정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 발효식품산업의 최대 숙제이다. 연구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맛을 과학적으로 이해하여 원리 기반의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제빵 공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발효종이다. 서울대학교 재직 시 SPC와의 산학공동연구를 통하여 제빵 특성이 우수한 제1세대 발효종인 토종효모와 제2세대 발효종인 상미종을 개발한 바 있다. 특히 상미종 개발은 누룩에서 선별된 토종효모와 토종 유산균으로 구성된 복합 발효종으로, 제빵 발효과정에서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발효환경을 진화공학과 Stability Analysis 기법을 활용하여 확립하였다.

제빵에 사용하는 고유의 발효종을 개발한 것은 자동차 산업에서 고유의 자동차엔진의 개발에 버금할 수준의 기술적인 쾌거이다. 우리 고유의 제빵용 발효종을 이용하여 과학적인 제빵 발효기술을 확립한 성과로 SPC는 한국생물공학회가 수여하는 “2021년 생물공학 기업대상을 수상하였다.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장으로서 우리의 발효식품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순간으로 기억된다.

 

서울대학교 교수가 내 인생의 Main Dish 였다면,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장은 인생의 디저트라고 생각한다.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Coffee Cake와 같은 디저트를 맛있게 그리고 멋있게 즐겼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한국생물공학회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디저트가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어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귀한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홀가분하게 PGA (평일 골프) 멤버로 돌아가면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감사,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윤리위원, J. Biotechnology의 

Editor 등 지금까지 맡아온 일과 함께 Bucket List 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