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명확하게, 초심으로!”
Date 2022-09-26 17:48:39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302
장 성 연 박사후연구원

Weill Cornell Medicine Department of Pharmacology
jsungyeon@gmail.com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고, 배우고, 또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준 한국생물공학회의 소식지에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관계자 분들과 인천대학교 장성호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나의 이 짧고 소박한 글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이,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뿌듯함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많지 않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특별한 사건이나 상황보다는 느낌이나 감정이 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뭘 하던지 두살 반 많은 언니를 항상 따라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아마도 내 첫 ‘공부’도 그저 언니랑 같이 뭘 하고 싶어서 옆에 붙어 있다가 시작된 것 같다. 또 유난히 책을 좋아해서, 집에 있던 셜록 홈즈 전집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지금도 내용이 속속들이 기억이 날 정도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당당하게 ‘교수’를 적어가서 담임 선생님이 ‘교사가 아니라 교수가 되고 싶은게 맞니?’라고 되물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생활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떤 교수님이 멋져 보여서 처음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는데, 그 후로 다른 꿈을 명확하게 가져본 적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릴때부터 ‘아, 나는 박사가 되어야 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성장해왔다.

애초에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엄청난 원대한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단순하게 ‘박사가 되고, 그 후에 교수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전부였기 때문에 오히려 학창시절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좋은 학교에 가고,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모교인 포항공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도 사실 ‘어차피 나는 대학원까지 가서 박사가 될거니까, 연구중심대학을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 라고 판단한 이유였다. 돌이켜보면 열여덟, 정말 어린 나이에 너무 큰 결정을 순식간에 해버린게 아니었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내 의지로내가 선택한 결정들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잘 버텨내고 이뤄낸 것이 아닐까 라는 결론이다.

이렇게 원하던 학교에 와서 첫 학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특히나 1년 안에 전공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전까지 생명과학 공부를 많이 해왔긴 하지만 늘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던 나는 고민 끝에 화학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늘 화학 공부도 재미있어 했지만 잘 하지는 못했던 탓에 2학년 때 전공 수업들을 들으면서 많은 도전이 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3학년 1학기, 드디어 지도교수님이셨던 정규열 교수님의 합성생물학 개론 수업을 듣게 되었고, ‘아 이런 연구를 해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참여 활동을 하고, 자연스레 학부 졸업 후 이 연구실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 생활은 예상만큼 녹록치 않았다. 이론적으로 배울 때는 쉽게 보였던 많은 실험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고, 수업으로 듣고 흥미를 느낀 학문이라 할지라도 내가 실제로 나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양도 수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많은 부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늘 열정적이시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내가 미처 생각치도 못했던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잘 지도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잘 배울 수 있었고, 입학 전부터 졸업할 때까지 8년 정도 함께 연구를 해왔던 사수선배의영향이 가장 컸다. 또 함께 입학하고 성장해온 동기들과도 같이 으쌰으쌰 하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고 성장하면서 학위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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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정규열 교수님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하지만 내가 교수가 되어 정말 평생 연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에 대한 확신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 동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국내든 국외든 학회를 갈 때마다 발표를 신청하고, 때때로 수상을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연구를 소개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더욱 더 내 연구를 좋아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하던 저널에 꾸준히 내 연구 논문을 게재하기도 하고, 한국 연구재단의 박사과정생 대상 연구 과제에 선정되기도 하면서 연구자의 길에 조금씩 더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그 도전의 일환으로 해외 포스닥을 지원하게 되었고, 졸업한 해인 2020년 COVID-19 팬데믹 상황이었지만 감사하게도 현재 소속인 Weill Cornell Medicine 의 Samie Jaffrey 교수님 연구실로 올 수 있게 되었다.

공학사, 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내가 의대 약리학과 연구실에서 포스닥 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대학원 연구실에 입학한 대학원생이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처음 해보는 외국 생활에, 팬데믹 상황으로 꽁꽁 얼어있는 현지 상황은 적응하는 데에 조금 버겁기도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계속 도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잘 해 낼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다시 옅어지고 있던 최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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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Samie Jaffrey 교수님 연구실 멤버들과 함께.


학창 시절에는 정말 후회 없이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것이 전부였고, 그래서 그에 대한 결과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연구를 하면서는 점점 더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줄어들고 그 부분들은 걱정과 두려움, 의심으로 물들게 되었었다. 우리가 연구를 할 때에, 물론 미리 사전 조사도 하고 세워 둔 가정을 토대로 사전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또 그를 통해 기존 연구들을 공부하고 익히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내 연구가 진짜 내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내 판단과 결심을 통한 실제 실험,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행동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단순하고 명확한 하나의 목표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기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계속 나를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지금의 모습보다는, 어릴 적 나처럼 그저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해왔고, 또 자신의 방식대로 지혜롭게 그 시기를 지나갔거나 또는 지금 지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이 모든 분들이 본인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그리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