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괜찮아, 나아가기만 한다면.
Date 2022-09-26 18:41:1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32
한 승 민 박사후 연구원

University of Arizona, Department of Surgery
seungminhan@arizona.edu

우선 창밖의 BT 스토리에 원고 투고의 기회를 준 인천대학교 김은정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출중한 해외 박사후 연구원님들이 많은데 내 이야기가 소식지에 필요할까 걱정이 있었다. 그러다 마침 박사후 연구원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나의 경험이 해외 박사후 연구원을 고려하는 후배 독자분들에게는 간접 경험으로, 선배 독자분들에게는 추억 회상으로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이야기를 적게 되었다.

아끼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솔직하고 가볍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얘기를 풀어보려 한다.

 

나는 왜 “해외” 박사후 연구원을 선택하였나, 그리고 그 생활은 어떤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학부 2학년 때 대학원 학부 연구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실험/연구를 놓아본 적이 없다. 학부 연구원으로서 선배들의 연구 보조로 실험을 시작하였을 때, 실험이 재미있었다. 연구 주제를 정한 뒤 연구의 목적에 따라 실험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흔히 요즘 유행하는 MBTI “J” 타입에게는 나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연구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 나는 자연스럽게 박사 과정과 박사후 연구원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박사후 연구원을 고려할 때 국내와 해외를 생각하게 되는 데, 내가 대학원을 입학할 당시는 (내가 아는 바에서는) 취업면에서 해외 박사후 연구원을 더 높게 대우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대학원 입학 당시부터 해외 박사후 연구원을 진로로 희망했다. 막상 내가 박사를 졸업할 때는 국내 박사후 연구원이 가지는 장점도 많아 진로를 많이 고민했지만, 한번 정한 건 해야 하는 무식한 성격과 더불어 해외에서도 연구 경험을 쌓고 싶은 욕심에 The University of Arizona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박사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박사후 연구원을 왔을 때 얼마나 기쁘고 들떴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박사 과정 시작 때부터 정했던 큰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고, 새로운 땅, 새로운 연구 그룹에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을 때 모든 걸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긴장이 되었지만 그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더 컸다. 박사 후 연구 과정에서는 박사 과정 때 진행하던 연구와 다른 연구를 하게 되었다. 박사 과정에는 나노 입자를 이용한 유전자 발현 모니터링으로 줄기 세포 특성 연구를 했는데, 박사 후 연구 과정에서는 면역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 (cancer immunotherapy)를 전담하게 되었다. 연구 분야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박사 과정 때 진행했던 나노 입자 기반 유전자 전달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박사 과정 때 배워오고 쌓아온 지식들이 도움이 되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질병 치료에 좀 더 가까워진 연구 분야이고, 평소 관심이 있던 연구 분야이기에 더욱 만족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048_5391.JPG

그림 1. 좌) University of Arizona 캠퍼스 사진 (사진 출처 ABC news), 우) 캠퍼스 내에 생긴 놀이공원. 봄학기에 캠퍼스 내에 놀이공원이 열리곤 했는데2020년부터는 코로나로 중단되었다. 내년에는 다시 열리길 기대해본다.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만족스럽다. 애리조나는 하늘이 너무 예쁜 곳이다. 애리조나 Tucson은 예전에 NASA에서 우주 관측을 했던 곳이라 밤에 밝힐 수 있는 밝기 레벨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이 넓어서인지 높은 건물이 필요 없어서 하늘을 보기에 너무 좋은 도시이다. 그만큼 석양도 예쁘고 별 보기에도 좋다. Tucson에 와서 얼마나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지인들에게 하늘 사진을 공유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애리조나는 그랜드 캐년 state인 만큼, Tucson에서는 차로 4시간정도면 그랜드 캐년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연휴가 낀 주말에 여행도 손쉽게 가능하다.

애리조나 하면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사막에 대한 이미지인데, 모래만 있는 사막 느낌은 아니고, 의외로 식물이 많아서초록초록하다. 하지만 확실히 여름에는 덥다. 2021년에는 여름 기온이 46도까지도 올라갔다. 처음 Tucson에 왔을 때, 9월인데도 불구하고 섭씨 40도로 숨이 막힐 듯한 더위에 깜짝 놀랐었다. 주변 미국인들에게 그 얘기를 전했지만 다들 의아해했다. 고작 그 정도로 왜 저러나 하는 반응이었다. 이제는 나도 Tucson의 더위가 많이 익숙해졌다. 건조한 더위라, 건식 사우나 방에서 나갈 수 없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숨이 막힐 듯했던 더위가 익숙해진 것처럼, 다들 각자의 자리 에서 현재에 스며들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포닥 4년차, 다음 포지션을 구해야 할 때라 이런 저런 고민이 많다. 누군가는 늦은 시기라고 할 수 있고, 스스로도 너무 늦은 시기에 고민하는 건 아닐까 주눅든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에 여유를 가지려 한다. 경주마처럼 시간을 다투기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주변을 살피며 너무 늦지는 않게, 경보하려 한다. 나의 리듬으로 행복한 현재와 준비된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096_5398.JPG
그림 2. 좌) 레스토랑 Patio에서 찍은 해질녘 사진, 우) 해당 레스토랑 내부에서 보이는 창 밖.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100_7925.jpg
그림 3. 12월의 그랜드캐년. 사진의 우측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박사후 연구원, 그 후는? Academia 일까 Industry 일까?


박사후 연구원 4년차, 현재 나는 한국과 미국, 학계와 회사 4가지 조합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처음 박사후 연구원으로 미국을 나올 때는 당연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내며 미국에서 취업도 고려하게 되었다. 박사과정부터 박사후 연구원 동안 최종 목표는 학계였다 (물론 지금도 학계를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박사후 연구원을 하는 목적 자체가 학계에 남아 연구를 하며, 지식을 쌓고 전파하며, 새로운 걸 발굴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취업 시장을 경험하며 회사 취업에 대해 오픈 마인드가 되어가고 있다. 취업 정보 웹사이트 중에 하나인 Glassdoor에 따르면 미국 내 바이오 테크놀로지 분야 회사는 박사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도 초봉이 기본 연봉만 해도 평균 $100,000 (현재 환전 기준 대략 한화 1억 3천만원)이 넘는다. 미국 내 박사후 연구원 연봉에 비하면 거진 2배에 가까운 연봉에 입사 보너스와 연말 보너스를 고려하면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학계와 비교했을 때 워크-라이프 밸런스 (워라밸)이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고 하니, 미국인들이 박사 학위 취득 후 회사를 가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학계도 장점은 있다. 정년 퇴직이 없다는 점이다. 한번 Tenured가 되면 80세가 넘어도 교수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미국에서 immigrant workers 이기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안정적인 immigration status 일 것이다. 학교를 비롯한 non-profit organization (USCIS기준에 의한 nonprofit organization)은 비자를 지원했을 때 비자가 보다 잘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H1 비자 (워킹 비자)같은 경우, 학교를 통해 지원하면 거의 발급이 되는데,회사를 통해 지원하면 추첨식으로 진행되어 대략 26%의 획득 확률을 가지게 된다 (비자에 대한 더욱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은 USCIS를 참고). 회사는 비자 비용을 지원하면서 굳이 비자 상태가 불안정한 immigrant workers를 고용하기를 부담스러워한다. 실제로 나는 J1 비자 기간이 일년 조금 넘게 남은 상태에서 몇 군데 회사와 인터뷰를 해봤지만 모두 비자 지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었다 (J1 비자는 5년이 지나면 연장이 안되기 때문에 다른 비자로 바꾸거나 영주권을 진행해야 한다). 대신 스타트업 회사는 비자 지원 비용을 서포트 하더라도 박사후 연구원을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187_7518.JPG

그림 4. 애리조나하면 빠질 수 없는 Saguaro Cactus (사와로 선인장)과 나. 선인장들 사이즈가 다들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내 키는 164 cm.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241_3427.JPG 

그림 5. Joshua national park (캘리포니아)에서 찍은 밤하늘 사진. 이때 은하수를 처음 보았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은 밤하늘의 아름다움에서 느낀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애리조나와는 상관없지만, 너무 예뻐서 넣고 싶었다.

 

지금까지 다음 포지션을 알아보고 있는 내가 직접 느끼고 주변인들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미국에서 학계와 회사 중에 고민한다면 빠르게 트랙을 정하는 게 좋다. 왜냐면 회사의 경우, 미국 내 포닥 경력은 회사 경력보다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 미국인 지인의 경우에도, 미국 내 박사 졸업 후 포닥 2년, 회사 생활 2년 (박사 5년이라는 가정 하에 총 9년)을 해도, 석사 후 회사 생활 5년 (석사 2년이면 총 7년) 한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승급 심사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니 미국 내 회사를 갈 것이라면 H1 비자나 영주권을 소지한 상태에서 빠르게 지원하는 게 월급면에서도 좋고, 포지션면에서도 시간 절약이 될 것이다. 물론 학계에 남아있더라도 비정규직 포닥 입장에서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PI와 트러블 없이 비자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통일된 연구 분야 내에서 실적을 유지하고 연구 과제 획득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미국에서 직장을 잡을 예정이라면 미국 박사과정이나 박사후 연구원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박사과정). 우선 나는 현재 속해 있는 연구팀과 함께 텍사스에 위치한 University of NorthTexas (UNT)로 함께 옮기면서 학계에 연구를 이어가려고 한다. 과연 3년 뒤의 나는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글을 마치며

 

대학원을 다닐 때는 내가 과연 박사를 할 만한 자질인지, 내가 하는 선택이 나에게 맞는 선택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포닥을 하며, 꾸준하게 연구를 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는 걸 보면 스스로 본인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틀린 선택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선택한 것이 본인과 맞지 않다면,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회의 시간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어디선가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대학원생분들도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수 있지만, 본인이 선택하는 것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란다.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지도와 조언을 주신 연세대학교 함승주 지도 교수님과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이끌어 주시는 UNT원영욱 교수님, 그리고 다른 많은 교수님들, 선배 박사님들, 대학원 선후배님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다. 끝으로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모든 분들의 연구가 흥하고 건승하시길 기원한다.

 

 

2576362e1ab952ed3ff264bd35536ce6_1664185460_4988.jpg
그림 6. 애리조나 투손의 Saguaro National park에서 찍은 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