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길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나날들
Date 2023-04-13 01:31:0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228




글을 시작하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젊은 BT人 부문에 기고할 기회를 주신 BT News 편집위원회 관계자분들과 성신여자대학교 현정은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원고 의뢰를 받았을 때 대단할 것 없었던 내 이야기를 없는 글재주로 어떻게 써야 할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현재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다른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을 주고자, 비록 짧지만, 지금까지 걸어왔던 나의 연구자로서의 길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공유하고자 한다.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첫 번째 발걸음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대를 다녀온 덕분에 23살 나이에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나는 전역과 동시에 미래의 직업에 대해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싶어 공무원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그래도 학점은 좋게 받고자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하던 3학년 1학기, 후에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이 되어주신 강원대학교 안철 교수님의 분자생물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이 수업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것 같다. 분자 수준에서 생명체의 로직(Logic)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던 안철 교수님의 수업은 단순히 학점을 따기 위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연구자의 길에 발을 내디딘 것 같다. 이후 취업을 고민하던 4학년 1학기 즈음, 과학발전에 직접 이바지할 수 있고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연구자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조언이 있었다. 사실 그 시기에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와닿지 않았었지만, 어쨌든 응원에 힘입어 석사과정을 해보기로 하였다.

 

모든 게 성장의 길이었던 석/박사학위과정

 학부 시절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수업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분자생물학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안철 교수님의 미생물 분자유전학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 처음 입학 당시를 회상해보면 지금은 눈감고 하는 클로닝이(실제론 지금도 눈은 뜨고 해야 한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금방 이해하고 따라오는 현 신입생들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난 부족한 능력으로 그래도 지금까지 잘 해왔다 싶다. 각설하고, 석사과정 동안에는 항미생물성 펩타이드인 박테리오신을 생산하는 젖산균을 발굴하고 동정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사실 어쩌면 이때 대학원생이 가져야 할 능력인 무한 반복실험에서 살아남기(비속어인 원래 의미를 나타낼 과학적인 표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를 익힌 것 같다. 모든 게 자동화 시대로 되어가는 지금 어쩌면 이젠 점점 필요 없으려나. 어쨌든, 약 6개월간의 긴 시간 끝에 아직 보고되지 않은 신규 박테리오신 생산 균주를 학교 근처 만둣집 김치 샘플에서 발굴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기대의 끈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갑작스레 찾아왔었다. 그 당시에 이 결과는 그렇게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 결과는 나의 석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고 이 박테리오신과 그 시스템에 대한 유전적 및 기능적 특성 분석을 밝혀 석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석사 학위를 마치는 시점에서 박테리오신과 같은 유용 산물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산업 미생물학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현재도 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한성옥 교수님이 지도하시는 미생물 바이오공학 연구실에 박사과정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3~5명 정도의 인원으로 생활했던 석사 학위 과정과는 달리, 평균 약 18명의 대학원생이 함께 상주했던 박사학위과정은 시작부터 새로웠다. 많은 인원이 있는 덕택에 연구와 실험방법을 포함한 많은 부분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인간관계가 어렵기도 했지만, 이 또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배울 부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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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 안철 교수님과 우두리 선배 (오) 미생불 분자유전학 연구실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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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성옥 교수님과 미생물 바이오공학 연구실원들

 

 

 박사학위과정을 시작하면서 대사공학을 이용한 헴 대량 생산 코리네박테리움 글루타미쿰 개발 연구를 처음 부여받았다. 박사과정에서 대사공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연구하게 되었는데 참 신기하고 재밌는 분야였다. 개량된 재조합 균주는 목적 산물의 생산 능력이 설계한 대로 바뀐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또한, 헴 대사경로 상 특정 유전자만 선별하여 과발현하는 것 이외에도 전사조절인자인 DtxR을 이용하면 헴 대사경로 전체를 한 번에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연구실 주영철 선배와의 저널 클럽으로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는 첫 번째 학위 주제인 헴 생산 균주 개발 연구를 잘 완료하여 논문으로 보고할 줄 알았다. 약 2년이라는 시간을 헴 생산 균주 개발에 매진하였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 해당 대사경로 상에 있는 여러 유전자를 추가로 과발현하고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복잡한 대사경로로 이루어진 헴 생합성 경로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헴을 대량 생산하는 균주를 얻지 못한 채, 연구 주제를 헴 생산에서 염료 감응형 태양전지 원료나 광역학 치료용 소재로 쓰일 수 있는 아연-포르피린을 생산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코프로포르피린에 철을 결합하여 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효소 촉매가 필요한 것과 달리, 아연-포르피린은 효소 촉매 없이 아연이 코프로포르피린에 결합한다. 이 덕분에 아연-포르피린은 그 당시 세계 최고 수준까지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었고 박사과정 2년 반 만에 첫 논문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아연-포르피린 생산 논문을 투고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도 헴 생산 연구를 놓지 못하였었다. 이 난제를 꼭 풀어보겠다는 연구자로서의 집념이 생겨났었다. 이때 어쩌면 연구자의 길을 제대로 걷기 시작한 것 아니었을까. 어쨌든, 난 헴 생산 향상을 위해 대사경로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뜯어보았다. 우선 포르피린 전구체인 아미노레불린산의 생산 증가를 위한 대사경로 재설계를 수행하였다. TCA 회로의 대사 흐름을 아미노레불린산으로 재분배하는 데 성공하여 아미노레불린산 생산 증가에 성공하였다. 해당 결과는 한국생물공학회지인 Biotechnology and Bioprocess Engineering 저널에 게재할 수 있었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헴 생합성 경로 강화를 진행하였다. 먼저 열역학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두 가지의 아미노레불린산 생합성 경로를 통합하여 포르피린 생산을 증대시켰고 헴 생합성 경로의 최적화에 성공하여 헴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이전 균주부터 생산된 헴은 대부분 세포에서만 측정되고 상등액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어쩌면 헴의 소수성 때문에 외분비 된 헴이 균주 세포벽에 붙은 것 아닐지 추측하였다. 실제로 야생형 코리네박테리움 균주 배양액에 헴을 처리하였을 때 처리 즉시 대부분의 헴이 균주 표면에 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세포벽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나 지질에 부착되는 것으로 예측했었다. 헴의 부착을 감소시키기 위해 먼저 CRISPR 기술을 이용하여 헴 결합 세포벽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하여 분비율을 증가시켰다. 또한, 균주 세포벽의 마이콜산 생합성을 감소하도록 유도하여 지질 형성을 억제함으로써 세포외생산을 증가시켰다. 나는 이 결과를 박사학위과정 중 꿈의 저널이었던 Metabolic Engineering 저널에 보고할 수 있었다. 이렇게 헴 생산 증대에 성공하면서 박사학위과정을 졸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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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 나이아가라 폭포 맞는 중 (오) 대만 어느 골목에서 현정은 교수님, 신상규 박사와 함께

 

 

 

 박사학위과정 중 논문을 작성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먼저 해외 유명 학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였다. 해외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내용과 결과 그리고 아이디어들은 늘 나에게 연구자로서의 동기부여를 주었고 머리를 신선하게 해주는 뜻 깊은 경험이었다. 학회가 끝난 후 하루 이틀 정도 근처 명소도 둘러볼 수 있었다. 학위과정 중 해외 학회에 참가하면서 총 5개국의 나라를 방문할 수 있었다. 모든 학회가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캐나다에서 열린 2016 ISME 학회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인생 첫 해외 학회여서 일수도 있겠지만, 학회의 분위기와 규모 그리고 그 나라의 분위기도 한몫했었다. 학회에 참가하는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학회를 다녀온 후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고 학회에서 준비한 세션과 파티들은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학회가 끝난 뒤 방문한 나이아가라는 나에게 정말 잊지 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해외 학회 이외에도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신 한성옥 교수님께서는 매년 2회씩 한국생물공학회에 참가할 기회를 주셨다. 좋은 학회에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주셔서 교수님께 늘 정말 감사했다. 학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제를 직접 수행할 기회가 박사과정 때 많이 주어졌었다. 석사과정 때는 주어진 연구만 수행하면 되었기 때문에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박사과정에서 과제업무를 경험해보니 연구를 하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알게 되었고 과제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 내 연구 주제의 가치를 올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제 경험이 더 좋은 연구를 도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많이 부족한 수준이었음에도 이른 시기부터 나에게 중요한 업무를 믿고 맡겨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박사후연구원 기간에는 더 좋은 연구 결과와 업적을 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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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 학사모를 하늘 높이 (오) 박사학위 졸업식에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이 글을 마치며….

 현재는 박사학위과정을 진행했던 미생물 바이오공학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한성옥 교수님 지도하에 좋은 환경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연구에 집중하고 좋은 연구 결과들을 도출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과거를 돌이켜보니 참 많은 일과 변화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한때는 좌절하며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깊게 고민도 해보았고 한때는 연구를 보는 게 아닌 성과만 바라볼 때도 있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처음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과학발전에 이바지하고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연구자의 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지금은 그 길을 가기 위해 그런 마음을 품고 급하지 않게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중이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갈 미래의 나와 평범하디 평범한 한 연구자의 글을 읽어주실 다른 연구자분들에게 하는 일 모두 잘되길 응원과 축복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큰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물심양면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주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에게 감사함과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