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야 할 길
Date 2017-04-01 18:45:5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827
양기석
박사
연세대학교 줄기세포 및 생체재료공학 연구실
yks1012@gmail.com

2017년 2월을 끝으로 대학원 과정 동안 익숙해진 공간을 정리하고 연구실을 떠나게된다.
짐을 정리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연구실 생활과 지도 교수님, 동료들과의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오르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 경험들에 감사함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신생 연구실에서 학위과정을 시작한 덕분에 다양한 연구분야와 공동연구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연구 외적으로도 수많은 값진 경험들을 했기에 더욱 감회가 깊다. 연구실 생활은 연구와 결과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으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금도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원과정을 하고 있는 학생 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라면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가고 있나?’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박사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하는 현 시점에서 또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길에 대한 고민을 하며 후배 연구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박사 학위 취득 후 6개월간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후 과정을 수행하였다. 처음에는 박사라는 호칭이 조금 어색했을 뿐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교내 외 세미나와 학회에 참가하면서 점점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학생이 아닌 박사로서의 제 몫을 단단히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진행하던 연구들을 마무리하면서 틈틈이 해외 포닥을 준비했다. 해외로 포닥을 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며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사실 처음 해외 연구실에 보낼 이력서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겪게 될 힘들고 답답한 상황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원할 연구실에 대한 조사와 지원부터 인터뷰 진행 및 최종 오퍼를 받는 날까지 약 4개월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 과정 중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내 자신이 주체가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무작정 내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어떤 실적들이 있는지를 나열하기에 급급한 영문 이력서를 준비하여 해외 연구실에 보내고, 그렇게 기다리던 면접 기회가 왔음에도 나 조차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애매하고 답답한 답변들을 하고 막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경험을 하고 한동안 ‘이렇게해서 해외포닥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왜 해외포닥을 나가야만 하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라고 자문하며 갈등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귀를 크게 열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때로는 쓴 소리도 삼키고 많은 격려와 응원도 받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제까지 내가 대학원 생으로서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가 아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내가 가고 싶은 연구실에서 나를 필요로 할일이 뭐가 있을지, 내가 그 일들을 하며 어떤 기쁨을 느낄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고 다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신기하게도 일이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지원서에 대한 회신율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터뷰 준비를 하고 나니 어떠한 질문이 들어와도 답변의 논리가 분명해졌으며 자신감도 살아났다.
물론 연구실의 여러 사정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 인터뷰 결과 및 다음 단계에 대한 안내는 매우 느리게 통보되며 이로 인해 일이 꼬일 경우 1순위의 최종 결과가 불분명한 시점에서 다른 오퍼를 받고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또한 오랜 시간 연락이 오지 않다가도 연락이 오면 바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겠다 .
이렇게 선택과 평가 및 검증, 인내의 여러 관문을 거쳐 해외의 연구실에서 연구생활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최종 오퍼를 받은 후에도 그 동안 진행하던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 등 마무리 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합류일에 맞추어 입국을 해야 하는데 행정처리 상황에 따라 비자발급이 늦어지는 것 역시 초조하고 힘든 일이다.
필자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박사과정이 마무리 되면 내가 가야 할 길도 함께 분명해질 줄만 알았으나 정답은 없었고 또다시 무수한 선택들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해외포닥 준비 과정을 통해 대학원은 지식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방법 또한 배우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 동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제에 답하고 평가를 받았다면, 이제는 주체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내고 스스로 풀어가야 하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진행해 보고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그 기쁨을 느끼고, 나아가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다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연구자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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