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기록의 시간들 (The Times of Challenge and Recording)
Date 2017-10-09 14:16:36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13,855
박 돈 희
전남대학교 생물공학과 명예교수
한국생물공학회 제 10대 회장
parkdon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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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보고 일 욕심이 많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만사에 더 적극적이고 열성을 다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CNN방송을 자주듣다 보니 세계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별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기전에 만났던 초등학교 은사님, 중학교 교감 선생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계 즉,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기인한 것이다. 요즘 39년간 정들었던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하니 만사가 홀가분하다. 선배교수님들의 정년퇴임식 마지막 인사 말씀에서 대과(大過) 없이 정년을 맞이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씀이 실감 나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듯 정년을 채우고 여유 있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그룹 창립자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 창립자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 대한민국을 부국부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그 분들의 신화 같은 삶이 지대하다. 지금 이 시각도 삼성의 핸드폰과 반도체 메모리가 전세계시장에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으며, 현대자동차가 세계의 도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감격스럽다. 우리가 아는 한반도는 매우 작은 나라이며 인구도 5천만 정도다. 그리고 67년 전 6.25전쟁의 파괴로 이 땅 어느 곳도 반듯한 건물 하나 없고 국민의 배를 부르게 채울 음식도 제대로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여건에서도 우리에게 세계를 향한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 분들의 심정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안 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럼 우리 세대는 후세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또 남겨야 하는 것인가? 한국생물공학회 회원들에게 이 칼럼을 통하여 너무 무겁고 어려운 명제를 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막부시절 가신(家臣)들의 행동수칙과 목적의식은 명확했다. 지금도 모든 분야에서 가신들이 가졌던 마음자세가 일본을 세계에 우뚝 선 나라가 되게 하였다고 본다. 그들이 모셨던 성주(城主)가 바로 나라 자체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망을 향한 자세를 생각해보면 될 듯하다. 우리도 토론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도록 중지를 모으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구 업적이 대단하거나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지방대학 교수의 삶이었지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향한 목표가 반드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 또는 전 세계를 행복하게 건설하는데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에 살아오면서 도전하고 기록해 온 일과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I)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위기는 북한의 핵무기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 힘만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매우 안타깝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라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100년이 지났지만 지정학적 모습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든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인구 출산율이 절벽이라는 점이다.우리세대는 형제가 6남매 이상이었는데 60년 지난 지금은 남매 이하다. 지자체장들은 인구문제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간다고 한다. 그들만 걱정하는 듯하다. 그동안 인구증가정책에 소모된 예산이 100조 정도 쓰였다고 하는데 전남은 2030년에 군 단위가 소멸위기라고 전망하고있다. 가정이나 국가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모든 활동을 좌우한다. 필자가 대학교 3학년이던 1973년 방학때다. 서울서 350km 떨어진 전남 월등면 산골로 농촌봉사를 갔다. 동아리 지도교수님이 사회학과 인구정책전공을 하시는 교수님이셨다. 그는 보사부 산하 인구정책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계셔서 봉사활동 책임을 맡고 있는 나에게 산아제한에 사용하는 콘돔이 들어있는 라면박스 크기의 2개 박스를 건넸다. 농촌동네주민 아저씨들에게 산아제한 계몽활동을 요청한 것이다. 미혼인 내가 동네 어른을 모시고 산아정책을 홍보한다는 것이 매우 쑥스러운 일임에도 용기 아닌 용기로 20여명의 어른을 설득하여 그중 두 분이 정관수술약정을 하였고 전남교육청 학무국장님이 산골오지까지 다녀간 일도 있었다. 전남에서 처음으로 정관수술 어른이 탄생한 것이다. 그 덕에 전국대학생봉사활동 보고대회에서 문교부 장관님의 환영사 다음에 학생대표로 답사를 하였다. 제 생애에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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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1973년 문교부 전국 대학생연합회 위로의 밤 팜프렛

 

답사원고에 우리사회의 소득재분배가 필요함을 역설하였으나 문교부 사회국장님의 완곡한 원고수정요구로 한참 동안 서먹했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산아제한 홍보는 60년 후를 전망하지 못함을 탓해야 할 것 같으며, 답사에 담지 못한 소득재분배단어가 경제원론 교과서에 있으면서도 문교부 국장님의 애원성 협박에 강하게 도전하지못한 점이 아쉽다. 아무튼, 지금도 인구정책과 소득재분배에 대한 적극적 대처는 국가적으로 시급한 일이다.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II)
한국생물공학회는 우리나라 전문학술학회 중에서 30년 이상의 전통과 미래의 비전을 간직한 단체라고 자부하고싶다. 30년 전 석유화학 산업의 정점에서 미래 산업을 통찰한선배님들의 생물 산업에 대한 기반과 인력양성에 열성을 기울이는 학술 열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선배님들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생물공학에 대한 먼 미래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1983년 미국 Vanderbilt대학교 화공과 Tanner 교수님의 지도로 Semi-Solid StateFermentation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지도교수님의 본심은 김치 연구에 관심이 매우 크신 것을 후에 알았다. 필자에게 그것을 하면 훗날 김치산업이 아시아권에서 크게 부각될 것이라고 권하였으나 미국까지 와서 김치를 연구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2주 동안 지도교수님과 신경전을 하였던 생각이 난다. 먼 미래를 보지 못한 필자의 무지를 지금도 탓하게 된다. 지도교수님은 학문과 실용을 연결하는 아이디어로써 산업에 염두를 두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 뉴욕 레스트랑의 건강메뉴 하나가 김치라고 언론에 나올 때마다 내 연구주제와 내 주변 자연환경을 세심히 관찰하여 국제적인 명품을 생산하는 것이 생물공학자의 의무라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 지구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 가족이 될 수록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이며 계속 도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1992년 미국대학중 공학계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MIT에서 포스트닥기회를 가졌었다. MIT화공과 Daniel Wang교수님이 운영하는 BPEC센터에서 “섬유층을 이용한 단백질의 크로마토그래픽적 분리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Charles L.Cooney교수님과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연구는 인체 혈액 속의 헤파리나제를 경제성 있게 회수하는 생물공정개발이었는데 귀국 후 연구를 계속 진행하지 못하여 신부전환자가 사용하는 혈액 투석장치의 국산화를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같은 주제의 연구를 평생을 통해 진행하면 학문의 성취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신념을 후학께 꼭 전하고 싶다.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Ⅲ)
필자의 30년은 한국생물공학회와 함께한 생활이다. 미미한 능력이지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미래의 꿈을 안고지칠 줄 모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필자는 생물공학회의 기획이사, 학술이사, 산업이사, 총무이사, 조직이사, 발전기금모금위원장, 부회장, 회장 그리고 회장 임기를 끝난 후 학회자문위원장을 10년 정도 역임하였다. 이제 금년 추계학술대회에서 명예회원으로 추대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매우 크다. 우리 학회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 회원들의 학술활동에 도움을 주고 학회 회원의 자긍심을 국제적으로 심어주는 학회 그리고 학회주도의 생물산업 정책을 이끌어 국가의 기술 부국을 앞당기지 못 함이 그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민간 신산업위원장을 맡았던 기억이있다. 김대통령님과 위원들이 청와대에서 회의를 함께한 자리에서 모든 부처 장관들에게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았음에도 정치력이 부족하여 현재 회자되는 4차 산업의 핵심인 생물산업을 활성화하지 못함이 국가에 빚을 진듯하다. 2002년이 한중수교가 1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 해 생물산업 대표 15명 위원을 모시고 위원장 자격으로 북경에서 3박4일 수교축하포럼을 개최하였다. 그 포럼의 중국측 대표인 북경의대교수는 자국 20%의 항생제 자급 제조율을 40%로 향상시키기 위하여 한국의 항생제생산 제조기술과 시설을 요청하였다. 우리 측 제약회사 파트너가 흔쾌히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 또 하나의 요청은 청화대 교수가 중국인이 이용하는 섬유의 60%를 목화솜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목화생산의 20%가 병충피해를 입는데 이를 방지하는 병충방지기술을 요구하였다. 그때 우리 측의 국책연구원 파트너는 방지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설명을 한 것으로 안다. 후에 그들은 이 문제를 일본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현재는 그 기술을 발전시켜 노벨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다.
우리는 중국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을 주거나 이전하며 국가 간에 무엇을 거래하고 얻어내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선진국은 기술거래가 철저하다. 손익계산을 철저하게 따지는 것으로 안다. 그것이 그들이 선진국으로 오래 버티는 요인이다. 학회를 위하여 많은 분들이 공헌하셨다. 그 분 중에 우리 학회 살림을 맡으면서 특히 총무이사를 거친 제8대 허병기회장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병기교수님은 일을 맡으시면 혼신을 다하신다. 필자는 학회를통해 허회장님과 인연이 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학회의 기틀과 역사를 써놓은 분이시기도하다. 초창기 학회자금이 부족하여 아주대 목교수님과 공동연구하는 연구비를 사용하시는 용단을 내리시기도 하였다. 허회장님의 일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월출하여 인하대에 초빙 온 외국인 교수에게 허회장님의 평가를 부탁드렸더니 그 교수님의 말씀이 허병기회장님을 Extraordinary man(탁월한 사람)이라고 한다. 학회를 위해 헌신하신 선배님을 존경한다.
우리 학회의 자료나 기록이 허회장님의 손에서 만들어 졌음을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필자가 총무이사 시절하였던 일 중 한 두 가지만 설명하려고 한다. 학술대회 때 사용하는 초록집의 디자인이다. 초록집은 학회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게 정보를 가장 쉽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점을 착안하여 학술 초록집 페이지에 발표자 테마가 A201이면 A는 After 오후, 2는 발표장2 그리고 01은 발표순서 첫 번째로 구성되어 있다. 발표자의 테마 번호만 알면 오전 오후 발표장소와 발표 순서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초록집의 창의적인 설계는 전남대 황백명예교수님의 공이 컸다. 학회는 학술활동과 산업정책에 정진해야 한다. 우리학회 영문지 BBE가 SCI에 등록되어 세계적 학술잡지 대열에 합류한 것이 제 회장임기중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포항공대 이선복 회장님의 공이 크다. BBE잡지가 세계생물공학분야의 10%내로 진입하길 후배 세대에게 부탁한다. 우리 학회 사무행정은 여성 4총사가 책임지고 있다. 임원진은 그 직원들이 재교육을 받아 학회에 평생 몸담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우리의 사명과 비전을 뒷받침하며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 사무실의 기록물들이 100년 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는 꿈을 그려본다.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IV)
전남대학교에서 39년간 봉직하면서 쉴 틈 없이 광주와 서울 그리고 외국을 다녔다. 자기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야 세상이 보인다. 우물 안에 개구리라는 속담이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보다 개인적으로 더 안타까운 것은 유익한 정보를 알려주는데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치 때문에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이 일본보다 늦었음이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런 부류가 곳곳에 도사리고 끼리끼리 어깨동무로 역사의 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방해의 틀을 하루속히 벗겨야 한다.

나의 생물공학분야 입문은 대학 2년 시절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오신 조영일교수님의 미생물을 이용한 수소생산과 산업화를 위한 고정화효소라는 이해가 어려운 강의를 듣고부터 미지의 막연한 학문의 동경에서 시작하였다. 지금도 은사님은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늘 일깨워 주신다. 석사논문주제는 “미생물을 이용한 합성폐수처리”이었으며 박사논문주제는 “효모의 액상 및 고상배양 중 라이신과 단백질 생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생물공학분야를 접하면서 생물공학이 미래 학문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국가차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학회활동을 열성껏 하였다. 학회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전남대 공과대학에 생물공학과 전신인 생물화학공학과를 1992년에 개설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여 정상적인 학과로 발전시키는 데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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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전남대 생물화학공학과 신설 공고문


국립대학에서 모든 학과의 존재가 상충하는 과정에 새로운 학문으로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관점에서 사립대학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창립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으면 성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금년 3월 1일 서울 신촌 소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나의 정년 퇴임감사 만찬을 조촐하게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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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박돈희교수 정년감사만찬 팜프렛

 

 만찬에 참석한 대학은사님께서 필자에게 새로운 학과를 전남대학교에 신설하였다는 사실은 전남대학교와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하게 된것이라고 평하여 주셨다. 전라도 광주라는 지역 야전사령관을 정년하고 서울이라는 사령본부에서 얻은 은사님의 경찬에 그동안의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필자 마음속에 있는 다른 작은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다음 두 가지 질문이다. 미국대학의 교수봉급은 학과와사람에 따라 다르다. 우리사회는 왜 획일적으로 봉급을적용하고 있는가? 또 다른 하나는 필자가 경험한 미국대학의 학과에 Head와 Chairman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학과를 책임지고 운영하며 5년 또는 10년 후에 평가 하여 책임을 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과는 학과장을 2년마다 돌아가면서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사회의 한 면이다. 평가가 난무하면서도 또한 평가가 없는 사회이다. 심사숙고하여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필자는 대학교를 변화시키고자 총장선거에 도전 한 바 있다. “꿈의 실현은 변화에 있다”란 제목의 자서전을 2004년 출간하여 내 철학과 미래 비전을 보여 주려고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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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전남대 바이오에너지사업단 제주도 워크샵


꿈을 함께하려는 동지들이 많지 않았다. 전략실패를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도전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것 같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실개천상류까지 올라간다. 떨어진 낙엽만이 물 위에 떠서 아래로 흘러간다. 시지포스 신화에도 있듯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하여 올려보는 것이 꿈이 있는 삶이아닌가. 광주시 양림동에 외국교사들의 묘역이 있다.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적 삶이 내 생각과 철학을 뼛속 까지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역만리 한국 땅에 와서 인술과 교육 그리고 전도 사업에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삶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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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학회 자문위원회 참석자 기념사진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V)
필자 강의 과목 중에 핵심과목이 생물공정공학 이었다. 생물공정공학 강의내용에 미국 식약청(FDA)에서 의약품을 승인하는데 필수적으로 적용하는 단어가 cGMP와 SOP가 있다. 이 두 단어의 원어는 current Good Manufacture Practice(cGMP)와 Standard Operation Procedures(SOP)이다. cGMP의 정의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의약품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관리 체제를 위한 필요요건을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SOP는 어떤 일을 하는데 요구되는 표준작업지시서이다. 필자는 수강생에게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철저하게 익히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직장 어떠한 업무를 담당하더라도 요구된 일을 수행하는 데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의약품을 제조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을 요구하는 과정이므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절차들의 완결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SOP는 표준작업지시서이기 때문에 일례로 학회 사무국이 학회 총회에 필요한 행사준비와 순서들을 철저하게 이행할 수 있다. 현 최 정우회장님의 총무이사시절 총회식장에서 담당직원 부재 시 다른 직원이 식장에 필요한 태극기게양 준비와 그 외 업무 등을 완벽하게 대신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한 예이다. 학회 이사의 업무내용과 사무국직원의 업무용 SOP가 준비되면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차질 없이 처리될 수 있으므로 선진국형 업무 체계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회사직원이 연차휴가를 종종 사용하는데 그 직원의 업무를 대신 할 SOP가 없어 시급한 업무에 차질이 생겨 고충이 많은 듯하다. 

 

맺으며
나는 올 2월 전남대학교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을 하였다. 1978년 3월 전라도 광주라는 낯선 도시에 처음 와서 어느덧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가 들면 말이 길어진다고 한다. 그동안의 일들을 자유롭게 반추하면서 두서없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늘어놓았다. 우리 사회의 출산율과 소득재분배에 대한 생각부터 학회에 대한 선배님들의 열정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관심과 관찰에서 확대되는 세계화와 비전에 이르기까지의 소회 그리고 학회나 조직에서 가져야 할 관리체계의 확립과 표준작업지시서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주변 그리고 우리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생각했던 것들을 서술하였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과 몸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며 이를 기록하고 또 탐색하는 것이었다. 시지프스 신화처럼 비록 그것이 엄청난 성과를 내거나 빛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고 무엇인가 움직여보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보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전과 기록의 시간들(The Times of Challenge and Recording)은 내 정년퇴임식장의 타이틀 제목이기도하다. 젊은 후배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자기 학문에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구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길 바란다. 우리 학회가 그런 젊은이들로 가득 찬 학문공동체가 되기를 고대하고 또 응원하고자 한다. 우리학회가 더 발전하여 세계의 인류복지에 도움이 되는 큰 사명을 안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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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전남대 생물공학과 신설25주년 및 박돈희교수 정년기념학술대회 정병석전남대 총장님과 기념촬영


끝으로, 인천대학교 총장취임 1년 언론회견에서 인천대학을 생물산업분야의 특성화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조동성 총장님은 바이오경제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일찍이 4차 혁명의 물결로 생물산업이 미래산업임을 간파하고 계셨다. 생물산업 이야말로 국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미래전략이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산업이다. 한국생물공학회의 구성원들이 더욱 경주해주기를 바라며 한국생물공학회의 학운이 더욱 융성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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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2011년 개최된 Bioenergy Korea Conference 국제심포지엄개막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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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2002년 전남대에서 개최된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대회 기념촬영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