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마음껏 꽃을 피우자
Date 2017-10-09 22:17:5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43
유 승 민
교수
중앙대학교 융합공학부
yooseun1@cau.ac.kr

모죽 이야기


‘모죽’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처음 몇 년간은 물을 주고 가꾸어도 전혀 자라지않지만, 5년이 지난 이후, 성장기(4월)에는 하루에 80cm씩 자라 나중에 30m까지 자란다고 한다. 이렇게 한 번에 폭발적으로 생장할 수 있는 이유는 5년 동안 묵묵히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덕분인데, 그 뿌리의 길이가 지하철 2개 역에 해당할 만큼 넓고 길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생활을 시작하고 졸업 후에 오랜 기간 동안 박사후 과정을 거쳐 전임교원으로 자리를 잡게 된 나에게는 이 모죽이라는 이야기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뜻하지 않는 여러 상황으로 인해 아직 본인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일 듯 하다.


메추리 해부와 함께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다


나의 연구의 시작은 학부기간 동안 학과 내 생화학실험실에 들어가서 대학원생 언니, 오빠들의 실험을 돕기 위해 실험용 쥐와 메추리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효소활성을 측정하기 위해 해부했던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떨리는 마음에 동물을 다루는 것 조차 어려워했으나, 학부 4년동안 방학 때마다 선배, 동기들과 즐겁게 실험하는 분위기에 푹 빠져 실험실 생활을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졸업 후에는 병원 연구소에 취업하여 아토피 피부질환 메커니즘 연구를 맡게 되었는데, 하나의 연구주제를 맡아 진행한 것은 처음인지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그 후, 회사로 직장을 옮기고 연구팀장으로서 질병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너무나 부족한 나의 실력을 점점 깨닫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연구지식과 기술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늦깎이 대학원생의 길을 걷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30세였다. 빠르면 박사학위까지 마칠 수 있는 나이에 석사학위를 시작한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컸던 지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학을 결정하였다. 터전을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겨 한국과학기술원의 생명화학공학과 대학원 진학을 한 것은 나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연구에 너무나 열정적이신 대사공학 대가이신 지도교수님과 좋은 연구 인프라, 수년간 쌓여져 있는 실험실의 노하우들, 늦은 나이에 막내로 들어왔지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던 선배님들과 동기들이 있었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연구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석박사 학위 동안 내가 해온 연구테마는 박테리아/곰팡이에 의해 발생되는 감염질환을 빠르고 간편하게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테마는 내가 가지고 있는 병원연구소와 회사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지도교수의 배려였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던 대사공학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분야와 다소 거리감이 있는 연구인지라, 구체적으로 연구토론을 하거나 연구내용을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지도교수님께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의사분들과 연구원 분들을 연결시켜주셨다. 연구 진행을 위해 몇 달 동안 주기적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출퇴근을 하면서 병원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실험기술 등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실제 임상에서 질병의 진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빠르고 정확한 질병 진단을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실제 체득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병원에서 제공해 주시는 소중한 임상검체들을 내가 만든 진단 시스템에 적용하여 그 결과가 좋거나 향상될 때마다 병원의사선생님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즐겁게 연구를 진행했던 일들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배시시 입가에 미소가 머물게 된다.

 

함께 하는 연구가 즐겁다.


연구를 하는 동안의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다른 분야의 연구실 또는 학과 학생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것이었다. 같은 학과 내 소재 개발 연구실의 박사님을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되어 나의 공동 연구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같이 연구하던 박사님이 본인이 공동연구하고 있는 전자공학과 학생을 소개시켜 주셔서 바이오물질을 활용한 전자소자개발 연구를 공동으로 계획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저명한 저널에 논문도 내게 되었다. 전자공학과 학생이 같은 연구실의 또 다른 학생을 소개시켜줌으로써 바이오센서개발 연구도 진행하여 꾸준히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알음알이로 소개를 받아 화학과 학생과도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 화학과 실험실에서2년이상동안 해결하지못했던 연구결과를 몇 개월 만에 해결함으로써 해외유명저널에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은 뿌듯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일이 계기가 되어 화학과의 연구실과는 10년이 넘게 지금까지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한번 같이 연구했던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계속 연락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즐겁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연구를 하면서 즐거운 점은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내가 알지 못하던 세계를 접하는 것이었다. 물론 생물공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무기화학이나 특히 전자공학 쪽 지식이 전혀 없어 연구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때면 매우 막막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반대로 생물분야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당황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는 전자공학과 학부수업을 듣는 등 어떻게 하면 소통이 될 수 있을지 매우 고민을 많이 해왔다. 이렇게 노력하고 수년간 계속적인 연구토론을 진행하니 이제 조금은 다른 분야가 생소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있었고, 또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데 대해서 즐거움이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내에서 만나 서로 학생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연구하는 입장이다 보니 더욱 친근해져서 학교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리고 공동 연구했던 모든 분들이 나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학생들에게 다른 연구실/타과의 학생들과 기회가 되면 먼저 찾아가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같이 연구할 거리도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박사후 과정 동안 연구 영역을 넓히다.


박사후 연수연구원 및 연구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학위과정 동안 해왔던 질병 진단 시스템 개발 분야와 함께 합성생물학 연구도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다. 유전자 발현 조절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네이처 자매지들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고, 표지 논문까지 낼 수 있었다. 그 후, 파생된 여러 합성 생물 도구 개발에 대한 연구들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이 합성생물학을 질병 진단 및 치료 시스템과 접목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 동안에는 물론 연구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연구도 수행하고 이를 접목하는 시도들도 하는 등의 즐거움은 있었지만, 학위과정보다 더 긴 박사후 과정을 보내다 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지친 날들도 많았다. 때로는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참고 끝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의 꿈과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매일 매일 다짐을 해왔기 때문인 듯 하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말자.


이 글을 쓰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되짚어보니,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짝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름길이 아닌 길을 걸어 오다 보니 중간 중간 먼 산을 바라보며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도 있었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조금 넓어진 마음을 가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모죽’ 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가능성을 여는 시기는 각자 다를지라도 자신의 꿈과 목표를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꽃도 일찍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늦게 피는 꽃도 있다. 하지만, 시기가 다를 뿐 모든 꽃은 예쁘게 그 꽃을 피울 수 있기에 피어야 할 때에 자기답게 마음껏 활짝 꽃 피우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중앙대학교 전임교원으로 자리를 잡은 지금, 나에게는 또 다른 삶과 도전과 사명이 주어진 듯 하다. 앞으로는한 사람의 가능성, 그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철학을 갖고 과학자이면서 교육자인 입장에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도 함께 열 수 있도록 대화하고 격려해 나가는 것을 시작해 보고 싶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어 큰 가르침을 주신 이상엽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대사공학연구실의 모든 선배, 동기, 후배들에게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수년간 같이 공동연구를 하며 많은 도움을 준 여러 학과 교수님들과 학생들, 병원 교수님들과 연구원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고 지지해 준 사랑하는 양가 부모님과 남편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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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과학기술원 이상엽교수님 연구실 선배, 동료, 후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