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로 가볼까? BT는 방대하거든..
Date 2017-10-09 22:41:57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54
백 승 필
교수
고려대학교 생명정보공학과
spack@korea.ac.kr

1. 1995년 1월
1995년 대학원 시작을 앞두고 실험실을 나가던 시절이었다. 학부 때 매료되어 온 전공이라지만, 당시에도 BT는 가능성만 풍부한 분야였다. 지난 몇 주의 대학원 예비생활에서 왠지 내 세대에서 뭔가 이뤄지기가 쉽지 않겠음을 느꼈음에도 BT에 묘하게 끌렸다. 그냥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접근해야겠다 싶었다. 세세한 지시보다 스스로 깨달아 움직이기를 원하는 지도 교수님 이하 랩 구성원들과의 성향도 맞았다. 당시, 내가 영악하고 치밀하게 따지며 이 BT를 바라보았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막 틀을 갖춘 듯해 보였던 이 분야는 데이터 변동성도 커서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살짝 의심도 들었지만, 그 카오스 같은 불확정성이 오히려 매력이었다.


2. 1997년 11월
박사과정을 결정하고 보낸 첫해의 겨울이었다. 외환위기로 IMF 국제 금융 구제를 받기로 결정된 어수선한 시기였다. 당시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 여러 소스의 뉴스 정보들을 기반으로 대학원기간 쌓아온 자료 분석 내공을 발휘하여, 실험실 멤버들에게 외환위기 원인을 근거로 한 향후 IMF 전망을 정리 발표했던 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IMF 구제 금융이 후일 나의 박사 테마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해를 넘자마자 국가 연구 배정액이 대폭 삭감되었으며, 내가 관여했던 연구 프로젝트는 축소되어야 했다. 아무래도 시약재료비가 많이 들면서 당장이 아닌 미래에 기대를 거는 BT 분야 과제가 원형 그대로 살아남기는 힘든 시기였다. BT는 척박한 환경에도 견디며 살아가는 생명체와 같은 운명이랄까? 어쩌면 이런 대 변화와 흐름에 어떻게 든 적응하는 것은 BT 연구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오랜 지구의 역사와 예상외의 환경 변화에도 살아남은, 진화라는 훈장을 가진 생명체처럼 말이다.

 

3. 1999년 7월
IT 기술의 확장과 함께 벤처의 붐이 한창일 때이었다. 연구실 출신 선후배들과의 의기 투합으로 잠시 벤처회사를 고민했던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가장 큰 상금이 걸린 신문사 벤처경진 대회와 국가기관 경진 대회 등에서 BT분야에서 유일한 수상을 했다. 결국, 벤처회사 설립을 함께 시도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바이오 벤처는 막연함을 설명하며 나아가야 한다. 당장이 아닌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는 분야 그것도 정말 모험에 가까운 벤처 형태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IT 버블이 터지고 나니, 이상하게 BT 벤처의 입지도 함께 줄게 되었고 결국 꿈꾼 추억만 남긴 채 돌아와야 했다. 누구는 허비한 시간이라 하겠지만, 단순히 대학원생활만으로 접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것도 BT 분야의 벤처를 하며 익혔다는 것은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경영을 전공하였던 형의 책장, 그곳에 꽂혀 있었던 많은 전공서적들로 대변되던 경영의 여러 분야가 실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전 경험으로 경험했음에 위안을 삼았다. 그것도 무모한 모험이라 불리는 BT분야 벤처에서 말이다. 그 중에 ‘인사관리’ 책은 두고두고 눈에 띄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BT 분야 벤처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4. 2001년 2월
새로운 주제로 박사 학위 준비를 시작하던 시기였다. 사실, 박사 학위 주제가 여러 이유로 변경되는 것 또한 BT 분야에서는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BT분야 박사과정 4년 차쯤 되면(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떠한 주제가 주어져도 해낼 수 있게 어느덧 길러져 있다. 신기한 일이다. 당시, 생명정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위해 그전에는 관심도 없던 컴퓨터 언어와 통계 공부를 그것도 따로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더욱이 내 금전과 인맥을 써가며 하고 있었다. BT는 그런 분야였다. 다시 보면 주제전환은 벤처를 하듯 위험한 시도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남이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BT분야는 과학 저널 임팩트가 높은 것들이 많아, 대중적 관심을 끌 정도(미디어에 나올 정도) 성과는 보여줘야 소위 쫌 하는 연구자로 평가되게 된다. 하지만, BT 분야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렇게 좋은 결과를 무작정 열심히 하는 연구자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 어쩌면, BT 연구자에게는 어떤 분야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도 스토리를 창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진흙을 빚어 스토리를 세우다가 예상치 않은 터치에 운으로 진주를 발견하는 상황에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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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지도교수님이셨던 유영제 교수님과 실험실 선배와 동기들과 함께한 경주 에서 한 컷. 이때가 석사 1년차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BT에 대한 생각이 단순해서 오히려 행복한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사실, BT 분야에 몸담은 이후로 대부분 일들이 나의 예상을 늘 벗어났는데… 특히, 현재 내가 이렇게 살이 찌고 흰머리가 내 머리를 덮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존했음에 감사하다. 사진 속 분들 모두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5. 2003년 8월
일본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시작한 시기였다. 사실 1년전인 2002년 말, CNN을 통해 들은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 발발 소식이 내 BT 연구 커리어에 영향을 주리라 예상이나 했었을까? 전쟁으로 인한 미국 정부의 연구비 삭감으로 미국에서의 연구원 생활은 무기한 미뤄지게 되었다. 7월 결혼 후 미국에서 신혼 생활을 계획했던 나는 국내에 거주지가 없던 상황이라, 일본을 포함한 어디든 해외로 일단 떠나야 했다. 일본에서의 상황은 나쁘지는 않았다. 초기 Instructor 지위였고 나름 여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 교토대학의 지도교수는 여유가 넘치는 분으로 초기 6개월간 그저 내가 알아서 주제를 만들어 보라며 기다리셨다. 사실, 박사 지도교수님도 기다려주시고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시는분이셨지만, 이분은 더 하신 분이었다. 심지어 나에게도 생소한 분야를 도전하는 상황임에도 원하면 해보라는 격려의 답만 해줄 뿐… 관심 있는 연구 주제를 자기주도적으로 잡도록 해주셨다. 농담으로 취미연구라 불리던 그 과제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후 확장되어 JSPS 연구원 및 JST 연구원 선정의 밑천이 되었다. 물론 대단한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연구라는 것은 자유로움에 근간해야 함을, 학위 과정 중 어렴풋이 들어왔던 것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세계 유일의 독특한 연구를 제안하고 수행하는 것 만큼 흥분되는 것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BT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꼭 대단한 결과적 성공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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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경주에서 있었던 생물공학회에 방문한 일본 연구자들과함께 하며 한 컷. 쾌락을 고민했던 그리스 철학자는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3가지를 언급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이고, 두 번째는 삶으로부터의자유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독립적인 사고이다. 이 세가지를 달성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연구자가 되는 것이한 방법이며, 특히 BT 분야 연구자라면 달성에 가까이에와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음에 말이다.

 

6. 2008년 8월
직업을 얻어 한국에 막 돌아온 시기였다. 앞서 말한 일본에서의 연구원 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2-3년의 단기가 아닌 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BT 분야에 몸담은 이후에는 이렇게 예상을 빗나간 일들이 종종 일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BT 주제가 아닌 독특한 연구를 해온 것은 국내에서 안정적 직업을 얻는 측면에서는 적합한 경력은 아니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영어 강의 및 발표 능력이 중요시 되던 시기여서 영미권이 아닌 일본에서의 경험은 바로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다시 처하게 된 연구자… 좁게 보면, 주변 흐름에 대한 대비나 변화 없이 있는 그대로 지내온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BT 분야는 생각이상 다양하다는 것이다. 모든 범위의 것을 감당할 정도로 많다.

 

7. 2013년 5월
한국에 돌아온 지 5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창조경제라는 독특한 정부의 기조 때문에, 국가 BT 연구 주제를 다시 고민했던 시기였다. 특히, 수행하던 모든 연구과제들을 기술이전 및 산업화 가능성 측면에서 다시 들여다 봐야 했다. 물론 진정한 기술이전과 산업화까지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BT 분야이지만, 그래도 BT 분야에서 기술이전 가능한 주제는 무엇일지 또는 실제적 활용 기술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등을 고민해 본 시기였다. (그것이 정책이 원했던 또는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랫 동안 BT 분야는 당장의 현재 보다는 미래를 논하는 기술이다 보니, BT 연구자들은 통상 좀 더 새롭고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이상적 연구의 주제라고 판단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BT 분야에는 꼭 새로운 아이디어의 연구만 집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관심을 두고 검토할 만한 아직 미결로 남긴 기 주제들도 예상외로 많다. 뭔가 생명력을 다시 불어 넣어볼 만한 주제가 다양한 범위에 걸쳐져 있는 것이 BT라고나 할까?


8. 2017년 9월
이 글을 쓰는 현재도 여전히 당황스럽다. 특히, 1년여 전부터 지금까지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사회 변화 이야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 나오면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기계가 주축이 되어 가는 이 거대한 흐름에서 BT 분야는 과연 잘 대응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여전히 미래 가능성만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를 포함한 BT 연구자들 대부분은 또 한번 깊은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BT분야 만큼 불확정적 미래로 꿈을 주고 삶을 걸게 하는 스릴 있는 분야가 있을까? 사실, 앞서 별거 없는 인생사의 일부분을 남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결국 미래는 모르고도 살아간다. 마치 우리의 주제이자 연구의 대상… 최적의 답과 기계적 결과를 거부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생명체처럼 말이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 BT는 방대하거든...